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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마음공부 공동체 : 열아홉 번째 이야기: 오직 모를 뿐, 숭산행원의 관음선종 ①
세상의 모든 마음공부 공동체 : 열아홉 번째 이야기: 오직 모를 뿐, 숭산행원의 관음선종 ①
마음인문학연구소2023-06-30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우리 문화가 K-POP, K-드라마, K-영화로 나아가고 있는데, K-불교를 시작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대선사입니다. 숭산스님은 세계 속에서, 특히 미국에서 포교를 하며 한국 불교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관음선종으로 맥을 잇고 있는데, 오늘 여행지는 바로 이곳입니다.

1 The Compass of Zen 1997년에 처음 출판된 책 표지이다. 불교 사상을 초기불교(Hinayana), 대승불교, 선불교로 구분하여 안내하고 있다. 2 선의 나침반은 2001년 두 권(가운데)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합본(오른쪽)으로 나왔다. 엄밀히 말해 이 책은 The Compass of Zen의 번역서이다.
선(禪)이 무언가요?

숭산스님은 미국을 중심으로 포교를 하셨습니다. 1972년 로드아일랜드에 프로비던스 선원을 개척했고, 이후 많은 분들이 제자가 되었고 출가를 했습니다. ‘이 분이 제자였어?’라고 생각할 만한 분에 존 카밧진(Jon Kabat-Zinn)이 있습니다. 마음챙김(mindfulness)하면 누구나 카밧진의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MBSR)’ 프로그램을 떠올릴 정도로, 마음챙김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는 바로 그 카밧진입니다. 1974년에 숭산스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숭산의 또 다른 제자에 현각스님이 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 대대적으로 알려진 눈 푸른(碧眼) 수행자, 하버드대 출신의 스님입니다. 현각은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글로 담아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책이 입니다. 1997년 샴발라 출판사를 통해 출판됐는데, 불교가 무언지, 선불교가 무언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지침서입니다. 필자가 미국의 원인스티튜트 대학원(미주선학대학원)에서 원불교학을 공부할 때, 불교 전반을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진정, 깨닫고 싶나요?

숭산스님이 생각하는 깨달음은 무얼까? 그 답이 이 책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책 제목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공부하고, 명상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숭산스님은 그 마음(Wanting Enlightenment)이 큰 실수(A Big Mistake)라고 합니다. 때론 그 마음을 도둑에 비유합니다. 도둑은 훔칩니다. 물건이라면 훔칠 수 있겠죠. 그러면 사랑을 훔칠 수 있을까요? 사랑은, 깨달음은 훔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도둑이고, 그 마음이 커다란 착각입니다.

한 번은 제가 원불교 필라델피아교당에서 설교를 했을 때입니다. ‘사과’가 무언지 아세요? Do you know ‘사과’? 청중을 향해 물었습니다. 다들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사과’ is apple. 그러자 다들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했습니다. 어쩌면 깨달음이란 게 사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지금, 나의 길을 가는 중입니다>)

숭산스님의 유쾌한 농담 같은 말씀인 Wanting Enlightenment is a Big Mistake은 깨달음에 대한 온갖 오해와 미혹됨을 깨부수는 커다란 망치가 아닐까.
오직 모를 뿐

서유기라는 중국의 옛 소설은 삼장법사가 부처님의 경전을 구하고자 떠나는 모험을 담고 있습니다. 온갖 고난을 겪고 불경을 구했더니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백지였다고 합니다. 이 백지 경전을 읽을 수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 더 절실히 와 닿습니다. 어쩌면 경전 중의 경전이 ‘오직 모를 뿐’입니다.

생각이 좀 복잡해, 그렇지? 모든 생각을 다 놓아버리고 이 ‘모른다’는 마음으로 돌아가. 그러면 중심이 갈수록 탄탄해져. 알겠어? 이건 굉장한 수행법이야. 그러나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돼. 우리의 본성을 깨달으려고 수행하는 거야. ‘나는 누구인가?’ 이 ‘모른다’는 마음만 지녀.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 이러면 중심이 자꾸 탄탄해져.(<선의 나침반>)

1 오직 모를 뿐. 제자들과 편지로 나눈 이야기로, 짧은 편지글 속에 선불교의 정수를 드러내고 있다.
2 세계 각지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며 그 만남을 기록한 오직 할 뿐은 오직 모를 뿐에 대한 선문답처럼 다가온다.
K-불교와 단단한 마음공부

이 세 권의 책은 K-불교를 세계에 알린 명저입니다. 한국의 선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화두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을 중시해 왔는데, 책의 제목들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화두입니다. 그래서 제목만 음미해도 선(禪)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직 모를 뿐’은 나를 낮추게 하고 나의 부족함을 사랑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안다는 마음’, ‘깨달으려는 마음’이 큰 착각임을 깨닫게 되고, 그럴수록 중심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 뿐’은 단단한 마음공부였던 겁니다.

다음 호에는 숭산스님의 세계 속 제자들의 이야기로 떠나보겠습니다.

출처 : 월간원광(http://www.m-wonkwang.org)

 

 

 

http://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10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