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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조 정전공부9: 반복되는 패턴, 고뇌의 물음표
마음대조 정전공부9: 반복되는 패턴, 고뇌의 물음표
마음인문학연구소2023-03-01

정신수양 훈련 과목

글. 김일원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정기훈련법

염불은 우리의 지정한 주문 한 귀를 연하여 부르게 함이니,

이는 천지만엽으로 흩어진 정신을 주문 한 귀에 집주하되 천념 만념을

오직 일념으로 만들기 위함이요,

좌선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주하되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 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요,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를 하는데 있어 정기로, 상시로 훈련을 하도록 한다. 즉 일정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을 하고(Fixed-term training), 이때 배우고 적공한 것을 일상에서 시시로 연습하며(Daily training), 또 이렇게 일상에서 상시로 공부하다가 다시 일정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시간이 연속이 되도록 한다. 이른바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이 서로 이어지게 하는 체계로, 마음 공부인이 일분 일각도 공부를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먼저 정기훈련에 대해 살펴보면, 정기훈련법은 정해진 일정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법의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게 하여 삼학 수행의 기본을 닦는 훈련법으로, 11과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1과목 가운데 염불·좌선은 ‘정신수양’ 훈련 과목,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정기일기는 ‘사리연구’ 훈련 과목, 상시일기·주의·조행은 ‘작업취사’ 훈련 과목인데, 이번 호에서는 정신수양 훈련 과목을 중심으로 공부해 보려 한다.

‘염불’은 부처님(佛)을 염(念)한다는 뜻으로 ‘나무아미타불’ 등 주문 글귀를 연속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외우는 수행법이다. 주문 행위 자체에 몰두하면, 시끄러운 마음이 잦아들고 어느새 부처님을 부르고 있는 그 한 소리만이 존재하게 됨을 경험할 수 있다. 정신이 산란하고 분별 망상으로 인해 어지러울 때 심신의 안정을 얻고 일심을 모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그런데, ‘주문’이라 하니 너무 미신적인 용어로 들리는가?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혹은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히 하고 싶을 때, 가끔 자신만의 어떤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승환씨의 노래 ‘덩크슛’에,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 야발라바히야~’라는 가사가 있었듯이, 그만큼 긍정적인 주문을 자신에게 되뇌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흔히 사용하는 접근법 중 하나이다.

한편, ‘좌선’은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주하되 자연스럽게 호흡하면서 한 생각의 주착도 없이 하여, 나의 본래 면목인 참마음이 드러나게 하는 수행법이다. 자신의 내면을 지긋이 관조하다 보면 사심 잡념이 가라앉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내면의 고요함이 지극하여져서 한 생각도 일어나기 전인 진경에 들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의 실상에 사무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고 선정이 이미 갖춰져 있으니, 시끄럽고 어지러운 번뇌 망상이 비워짐에 따라 본래 청정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염불과 좌선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후에 ‘염불법’과 ‘좌선법’을 공부하는 차례에서 구체적으로 하기로 하고, 본 지면을 통해서는 이러한 염불·좌선과 같은 ‘정신수양’ 훈련 과목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좀 더 이야기 하려 한다.

우리는 가끔씩, “어머, 내가 왜 그랬지? 내가 그때 귀신 씌였는가 보다…”와 같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즉, 제 정신으로는 하지 않았을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을 때,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힘드니 저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뿐만 인가? 마음이 떡하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기 저기 끌려 다닐 때 “정신이 하나도 없네, 어휴…”라고 곧잘 하게 되며, 신경을 현재 순간에 잘 쏟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처사를 하는 사람을 보면 “정신 좀 차려!!”하는 챙김이 절로 나오곤 한다.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우리는 ‘지금-여기(now-here)’에서,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참 많다. 안으로는 여러 가지 분별과 치우친 마음들 때문에, 밖으로는 욕심나는 경계에 이리 저리 끌리어,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종종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작년에 했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매번 저런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 등등, 결국은 자기가 선택한 삶의 연속이건만 반복되는 패턴에 대한 고뇌의 물음표를 던져댄다.

그러나 몇 십 년 동안 분별하고 주착된 마음을 가져온 것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겠는가? 갖고 싶고 얻고 싶고, 또는 하기 싫은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제어가 되겠는가? 그 마음의 굴레 속에, 그 마음들의 습관 속에 하염없이 똑같은 업의 행위를 되풀이 해 나갈 뿐이다.

일상을 잘 살고 싶다면, 지혜로운 취사를 하는 내가 되고 싶다면, 그래서 반드시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공부’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정기적인 수양 시간으로 이어져 마음에 자주의 힘이 생기도록 ‘되풀이하고 익혀 나아가야’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훈련(訓練; training)’이란 용어를 사용하신 이유이다.

 

http://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10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