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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칼럼 [삶의 향기] 풀꽃을 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길
새전북신문 칼럼 [삶의 향기] 풀꽃을 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길
마음인문학연구소2022-04-21

/손시은(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바야흐로 천지가 꽃밭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울긋불긋 야단스럽다. 여기저기 잘 차려진 꽃들의 향연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겉모습만으로 이몽룡을 차별해서 생일잔치 말석에 변변찮은 술상 하나 적선하듯 차려준 남원부사 변학도와는 격이 다르다. 꽃들의 잔치에서는 모든 이가 주빈이고 모든 이가 환대받는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초목들이 꽃의 향연을 열어 가슴 가득 만흥을 돋우는데 무엇으로 답례를 하면 좋을까. 이몽룡 같은 빼어난 시재(詩才)는 없으니 그저 꽃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감사 표시를 해야겠다.

지인을 만나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며 꽃 이름 대기 게임을 시작하였다. 벚꽃, 목련, 개나리, 조팝꽃처럼 화려하고 탐스러워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꽃들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찬란함의 정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철쭉과 영산홍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산책로 옆길을 따라 피어 있는 동백꽃, 산수유, 박태기, 명자꽃, 수선화가 그 뒤를 잇는다. 봄바람에 수줍게 나부끼며 수수한 연보라색 꽃송이를 살포시 드러내는 수수꽃다리의 이름도 호명된다. 꽃을 찾아 시선은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아는 꽃이라는 게 피차간 도긴개긴이라 민들레, 제비꽃까지 말하고 나니 밑천이 다한 느낌이다. 아예 걸음을 멈추고 허리까지 깊게 숙이고서 땅바닥에 붙은 듯 자라는 작은 풀들 사이를 눈길로 더듬는다. 잃어버린 금반지라도 찾듯 애틋하게.

자세히 보니 작고 아름다운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 있다. ‘시이불견(視而不見)’, 무심히 스쳐 지날 땐 풀인지 꽃인지조차 분간이 안 됐는데, 마음을 두고 보니 빛깔도 모양도 제각각 한껏 곱다. 큰개불 알꽃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봄까치꽃, 꽃차례가 말려 있어서 꽃말이라고 했던 것이 발음대로 이름으로 굳어진 꽃마리는 흔치 않은 파란색 꽃잎이 산뜻하고 매력적이다. 하얀 꽃을 자랑하는 봄맞이꽃, 점도나물꽃, 벼룩나물꽃, 별꽃, 쇠별꽃은 여전히 헷갈리지만 이름은 겨우 기억해서 다행히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땅에 바짝 붙어 앙증맞은 꽃잎을 하늘을 향하고 있는 누운주름잎, 얼핏 딸기꽃과 흡사한 노란 양지꽃까지 찾아내어 이름을 부르고 나니 꽃잔치 손님으로서 예의는 어연간하게 갖춘듯싶다.

목련이나 벚꽃 등은 크고 화려한 꽃으로 봄꽃의 대명사라는 영예를 누리다가 금세 꽃을 떨군다. 짧은 봄일망정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반면에 봄까치꽃, 꽃마리, 별꽃, 낮은주름잎 같은 작고 소박한 풀꽃은 한여름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 외유내강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야 비로소 눈부처로 담겨지는 저 풀꽃들은, 보이는 외물에 현혹되면 이면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있다는 진리를 공손히 받들라는 의미는 아닐지.

크고 화려한 것들에 압도되기 쉬운 세상에서 작고 초라한 것들은 괜스레 주눅이 든다. 남과의 비교를 통한 우월감이 행복의 척도인양, 허장성세가 판을 친다. 일찍이 고려전기의 문신이자 작가 정습명은 `석죽화’라는 시에서 붉고 탐스러운 모란꽃만 사랑하여 집집마다 꽃밭 가득 가꾸면서 거친 초야에 피어난 패랭이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세태를 풍자한 적이 있다. 천여 년이 지난 지금, 꽃의 계절인 이 봄에 우리는 과연 어떤 꽃에 마음을 주고 있는가. 나 보란 듯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찰나적인 겉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그 주위의 잘 보이지 않는 소중한 아름다움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이제는 온 국민의 애송시가 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아름답게 표현한 아포리즘이다. 우리 모두가 그 소박하고 간결한 시구에 담긴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세상은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number=74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