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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칼럼 [삶의 향기] 꿀벌 실종 사건,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새전북신문 칼럼 [삶의 향기] 꿀벌 실종 사건,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인문학연구소2022-03-24

손시은(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최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집단 실종 사건이 있다. 바로 꿀벌 실종 사건이다.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는 바쁜 움직임도, 윙윙거리는 힘찬 날갯짓 소리도 끊겼다. 자식처럼 키우던 꿀벌들이 사라져 텅 빈 벌통을 보는 양봉업자들은 망연자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꿀벌 집단 실종은 꿀벌로 생계를 꾸려가는 양봉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상당수가 꿀벌의 꽃가루받이 활동 덕분에 맺은 열매이다. 과일과 채소 같은 이른바 웰빙푸드는 70% 이상을 꿀벌이 담당한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채소농사, 과일농사는커녕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작물 재배도 어려워지게 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전남·경남·제주 등 남부지역에서 시작된 꿀벌들의 집단 실종, 즉 ‘군집붕괴현상’은 충남·강원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실종된 꿀벌들이 다른 어딘가에 새로 집을 짓고 잘 살아가기만 한다면야 생태계 전체에 별 탈이 없겠지만, 집에 남은 여왕벌과 유충은 굶어죽고 사라진 꿀벌들 대부분도 집단 폐사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벌통 한 개당 꿀벌 개체수를 어림계산하여 이렇게 죽은 꿀벌이 모두 몇십 억 마리에 달한다며, 환경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고취하는 기사도 있다. ‘몇십 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낌은 잘 와닿지 않지만 바람에 살랑이는 봄꽃의 아름다운 자태를 탐하는 꿀벌이 없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지난주 거제도의 바닷가에서 소담한 모습으로 눈길을 잡아끌던 매화, 엊그제 집 근처 산책길에 만난 봄의 전령사 산수유, 그 만개한 꽃송이에 코를 박고 흠뻑 향기에 취하는 동안 어떤 방해나 위협도 받지 않았다. 꽃을 다툴 꿀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봄날 오후의 고즈넉함은 일순간 공포스러운 적막감으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그 많던 꿀벌의 신나는 비행, 즐거운 합창은 왜 사라졌을까? 그리고 꿀벌들은 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을 꿀벌응애 같은 기생충, 과도한 살충제 살포에 의한 꿀벌들의 회귀성 상실, 이상저온 때문에 제대로 발육하지 못한 점과 짧아진 개화 기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꿀벌들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어 군집붕괴현상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신체 면역체계의 붕괴로 인한 귀환 능력의 상실, 비행과 탐색 능력 저하를 꼽는다. 결국 살충제에 들어있는 신경 자극성 화학물질이 꿀벌의 중추신경계에 이상을 일으켜 꿀벌로 하여금 객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레이첼 카슨(1907~1964)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통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의 실태와 그 위험성을 고발하고, 환경운동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된 농장주들은 대규모 경작지에 옥수수, 밀 같은 단일 작물을 재배하고 대량의 살충제를 항공 살포했다.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하천으로 흘러든 살충제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물고기를 먹고 사는 새들도 사라졌다. 살충제는 애초에 겨냥한 벌레뿐 아니라 주변 생물들까지 죽음의 사슬을 채웠다. 레이첼 카슨은 이처럼 살충제 폐해로 인해 봄이 와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을 예견했는데, 평행이론마냥 지금 우리는 꿀벌의 윙윙거림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을 맞이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살충제가 해충을 죽일 수는 있지만 익충은 죽이지 못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늘어놓았는데, 꿀벌들의 집단 실종 사건이 속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여전히 그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수십 년간 꿀벌을 길렀는데, 오랜 경험에서 알게 된 벌의 생리와 행동을 대해 다른 벌레와 서로 다투는 일도 없고 초목에 해를 끼치지도 않는 “어질고 착한” 벌레라고 하였다. 그 어질고 착한 꿀벌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들려주는 봄의 노래를 기꺼운 마음으로 감상할 날을 기다린다.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number=7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