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성 프란치스코와 아시시 (하)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프란치스코와 교황
지난 시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성경>에 나오는 위인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교황이 되면 자신의 이름을 선택하는데, 2013년 선출된 교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지금껏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 교황이 없었기에, 현 교황님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교황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과 인연이 깊습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과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교황을 만나 비무장지대의 폐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선물로 드렸고, 교황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해주었습니다.
아시시, 세계 평화의 기도를 시작한 곳
평화는 모두가, 온 나라가 염원하는 가치일 것입니다. 그 가치를 실현하고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은 1986년 10월 27일 역사적인 순간을 마련했습니다. 세계 종교 지도자를 초청해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고, 종교 지도자들은 각자의 전통에 따라 평화를 염원했습니다. 바로 그 장소가 아시시였습니다. 왜 아시시로 정했을까요? 당시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기 평화, 화해와 형제애의 상징으로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라는 거룩한 사람의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의 장소로 이 도시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1986년 아시시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이 시작되었고, 여러 종교가 함께 모여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가 종종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25년 후인 2011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아시시에서 제4차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평화의 성자, 프란치스코
<데미안>이라는 소설로 친숙한 헤르만 헤세. 그는 젊은 시절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썼는데, 프란치스코가 성 다미아노 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불화하게 되고 집에서 쫓겨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를 교회의 권위 앞에 소환하여 교회의 재판에 부치기로 하였다. ~ 아버지가 불같은 노여움 속에서 그를 내치고 상속권을 박탈했기 때문에, 청년은 지체 없이 … 자신의 옷들을 모두 벗어 넘겨주고, 벌거숭이가 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속하길 원한다는 자신의 결의를 고백하였다. … 이것이 프란치스코와 거룩한 가난과의 혼인이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이재성 옮김, 39~40쪽)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잇길 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길 선언하고, 가난함의 성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 ‘가난함’이야말로 프란치스코를 평화의 성자로 만든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아시시, 프란치스코와 가까워지는 곳
프란치스코는 분명 위대한 성인이기에 많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경원(敬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원은 ‘공경하지만 멀리한다’라는 의미인데, 위대함을 강조하다 프란치스코를 멀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파수공행(把手共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을 뜻하는데, 아시시라는 아담한 동네를 거니는 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나 그와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정신(프란치스칸 영성)을 잇는 수도원이 세계 곳곳에 있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수도사들이 많지만, 그들은 스스로 ‘작은형제회’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자신들을 부르고,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불러주길 바랄 겁니다. 검소함, 낮춤, 가난함. 이것은 소박한 위대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어떤 점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했을까? 어쩌면 지금 교황님의 행보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걸었던 그 길과 겹쳐 보입니다. 그 발걸음이 시작된 곳이 아시시입니다. 실제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시를 자주 방문했습니다.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하는 그 마음이 전 세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이끌고 있고, 그 중심에 아시시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공간을 성지(聖地)라고 부릅니다. 성지는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땅입니다. 보통 명상센터와 같은 시설을 갖춘 공동체를 마음공부공동체라고 하지만, 아시시라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마음공부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3년 전 아시시에 머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부활전 전야였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아시시의 골목을 거닐었고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가서 부활절 전야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다음 날도 아시시의 골목을 거닐었습니다. 그가 태어나 살아온 이야기가 골목 골목에 담겨 있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이 공간을 거닐면 800년의 시차를 넘어 프란치스코 성인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프란치스코 성인의 것으로 회자되는 ‘평화의 기도’로 이달의 여행을 마칩니다.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얻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
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참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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