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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마음공부공동체: 성프란치스코와 아시시(상)
세상의 모든 마음공부공동체: 성프란치스코와 아시시(상)
마음인문학연구소2022-02-01

성 프란치스코와 아시시 (상)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성 프란치스코
지난달 첫 여행으로 스즈키 선사의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그 지역은 18세기 후반 스페인의 선교단체 미시온 산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Misión San Francisco de Asís)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있고, 여기에서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 이름이 나왔습니다. 사실 ‘산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스페인어입니다. 아시시(Assisi)는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이고, 성은 천주교의 성인을 뜻하며, 프란치스코는 사람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를 이탈리아 아시시로 정했습니다.
아시시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 d’Assisi)
중세의 도시국가(코무네)는 안전을 위해 주로 산자락에 자리합니다. 아시시는 수바시오 산(Monte Subasio)의 서쪽 능선에 자리하고 있고 성곽이 주위를 에워싼 자치도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1200년경 아시시 인구가 2,000명 정도로 추정되니, 아담한 도시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아시시 전경의 왼편에 보이는 큰 건물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입니다. 이 건물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리고자 건축된 것으로 도시의 규모를 생각할 때 거대한 건축물임이 틀림없습니다. 청빈한 삶을 지켜온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걸맞지 않다는 의견이 건축 당시에 있었지만 대성당은 완공되었고, 아래층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를 모셨습니다. 또한 위층 본당 내부에 그의 일대기를 28개의 벽화로 완성했는데,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인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참여했습니다. 이곳은 종교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훌륭한 건축이기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와 성 다미아노 십자가
프란치스코는 1182년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아시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때 포로로 잡혀 1년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아시시로 돌아왔지만, 세상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1205년 다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이때 계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왜 주인을 섬기지 않고, 종을 섬기려 하느냐? 네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라.”
그는 말씀을 따라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늦가을 성 다미아노 성당(Chiesa di San Damiano)에서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이러한 신비체험을 겪으며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청빈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 다미아노 성당을 비롯해 여러 성당을 보수했습니다. 나중에 프란치스코는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라는 말씀이 그리스도교회의 재건을 의미함을 깨닫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의 삶을 따르는 작은형제들
프란치스코의 청빈한 삶을 따르고자 동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작은 공동체(수도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1210년 수도회의 인준을 받고자 로마로 향합니다. 당시 교황은 인노첸시오 3세로,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세 유럽에서 교황권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이런 연유로 프란치스코가 교황을 만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교황에게 구두로 인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제출한 회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쓰러져가는 라테라노 대성당을 어깨로 떠받치는 프란치스코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라테라노 대성당은 로마 주교좌 성당으로 교황을 상징하기에 모든 성당의 어머니로 여깁니다. 이런 꿈을 꾸었으니, 프란치스코의 수도회와 규칙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수도회의 전통은 점차 커지고 분화되면서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세 흐름으로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규칙을 따르며 ‘작은형제들(fratrum minorum)’로 불립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갈색 수도복이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커피의 빛깔과 같아 카푸치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면 작은형제들이 더 친근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하는 마음은 전 세계에 뻗어있기에 아시시는 작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회라는 공동체를 800년 동안 이어준 구심점이 바로 아시시입니다. 말씀드릴 게 더 있지만, 이번 여행은 지면상 여기서 멈추고 다음 달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5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