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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칼럼 [삶의 향기] 백일홍, 100일의 뜨거운 기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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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21-08-12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손시은(원광대 마음인문학 연구소 연구교수) ‘방콕’으로 여름휴가를 보냈다. 마침 동경올림픽 경기가 한창이어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하며 응원도 하고, 주인 잘못 만나 고생 많은 몸을 건강한 먹거리와 적당한 운동으로 호사시키다 보니 하루가 금세 간다. 이따금 답답할 때면 햇볕보다 더 뜨거운 쓰르라미 소리를 들으며 아파트 주변을 거닌다. 잘 가꿔진 수목들의 짙푸름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자홍색 꽃들이 하늘거리는 배롱나무다. 백일홍의 발음이 변해서 배롱이 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배롱나무를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백일홍은 나무 백일홍과 풀꽃 백일홍,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보니 간혹 혼동하는 일도 생긴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나무 백일홍, 즉 배롱나무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헷갈릴 리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들꽃을 원예종으로 개량한 풀꽃 백일홍이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이 꽃을 백일홍이라 부르고 있다. 굴러온 돌의 위세에 이름을 내주는 신세가 된 나무 백일홍은 누군가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는 않을지. 그 후로 나는 나무 백일홍을 배롱나무로, 풀꽃 백일홍을 백일홍으로 부름으로써 이 둘을 나름대로 구별해 왔지만, 사람들과 사이에서는 실수할 때가 종종 있다. 예전에 정원을 아주 멋지게 꾸며 놓은 식당에 간 적이 있다. 함께 간 지인이 백일홍이 정말 예쁘다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자기에 당연히 풀꽃 백일홍이려니 생각하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지인이 말한 것은 나무 백일홍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학창 시절 학급에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으면 혼선을 막기 위해 친구들의 키에 따라 이름 앞에 각각 ‘큰’과 ‘작은’을 붙여 부르곤 했다. 동명이인 백일홍도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터, 이제부터 배롱나무와 백일홍으로 칭한다. 배롱나무는 그 이름처럼 사정없이 내리쬐는 여름 햇볕 속에서 100여 일을 붉게 꽃을 피운다. 핀 꽃이 아직 질 무렵 새로운 꽃봉오리가 계속 이어서 터진다. 이렇게 번갈아 가며 피고 지는 기간이 꽤 길어 거의 여름 내내 피어 있는 배롱나무꽃을 볼 수 있다. 꽃만 100일 동안 연달아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줄기도 백 갈래로 벌고 또 그 가지마다 수없이 많은 작은 가지들이 뻗어져 나온다. 이처럼 온몸으로 ‘백(百)’이라는 숫자가 무색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초록 세상에서 붉은 존재감을 뽐내는 배롱나무는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선 인조 때의 유명한 시인인 계곡 장유는 뜰 가득 피어난 배롱나무꽃이 마치 겹겹 접어진 비단을 펼친 듯하다고 읊었다. 백일홍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여서 장유가 살았던 당시에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의 공원이나 거리마다 백일홍 나무들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점점 더워지는 지구 걱정과 함께, 질식할 것 같은 여름 더위 속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아 고맙고 또 곱다. 배롱나무꽃이 지면 올벼가 익는 가을이 된다. 그래서 시속에서는 배롱나무꽃으로 농사의 풍흉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100일의 시간을 뜨겁게 익어가면 어느덧 결실의 계절이 찾아오는 것이다. 뜨겁게 익어가는 과정이 없이 결실을 거둘 수는 없다. 결국 100일은 기적을 만드는 시간이다. 우리 모두도 눈물겹고 눈부신 기적을 만들기 위해 이 여름을 뜨겁게 익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아직 열기는 가시지 않았지만 벌써 입추가 지났다. 모기 주둥이가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곧이다. 배롱나무꽃을 보며 이 뜨거운 여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_2021&number=7209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