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장·교무
영(靈)이란 말은 육(肉)과 상대되는 말이다. 풀어쓰면 영은 영혼, 육은 육신이다. 일상의 마음작용이나 모든 정신현상이 영의 작용 아님이 없다. 그렇다면 영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인가?
정산 종사는 영을 대령(大靈)과 개령(個靈)으로 간명하게 설명한다. <정산종사 법어>에 “동물은 개령이 있으나 식물은 대령만 있다(원리편 15장)”고 하였고, <한울안 한이치에>에 “천지는 대령이요, 사람은 개령이다(일원의 진리 84절)”, “우주의 영은 대령이요, 사람의 영은 소령(小靈)이다(일원의 진리 87절)”라고 하였다. 대(大)와 소(小), 전체와 개체의 관계로 영을 살펴본 것이다.
우주(천지) 전체는 하나의 영, 즉 대령이다. 식물, 동물 등 모든 것이 이에 포함된다. 영의 체(體)로 볼 때, 우주만유는 모두 평등하다. 전체가 하나의 영혼이며, 우주가 한 생명이다. 다만 영의 용(用)에 있어서 동물만 개령을 가진다. 그만큼 그 작용(행동)에 책임이 뒤따른다. 즉 동물이 개령을 가진다는 말은 각각의 의지에 따라 업을 짓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식물은 대령으로서 오직 세상에 순응할 뿐이지만, 동물은 개령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대령과 개령과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 정산 종사는 “마음이 정한즉 대령에 합하고 동한즉 개령이 나타나, 정즉합덕(靜則合德)이요 동즉분업(動則分業)(원리편 15장)”이라고 밝혔다. 우리의 마음이 고요하면 모든 분별이 사라져 본성(대령)에 합한다(靜則合德). 다시 경계를 따라 움직이면 모든 분별(개령)이 나타나 각자의 육근을 통해 업(業)을 짓는다(動則分業).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육신과 함께 한다. 이로 인해 영혼은 각자의 육신을 자아로 분별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렇게 영혼은 각자의 육신을 통해 업을 짓고 살아간다. 각자의 방식대로 세상을 감각하고, 생각하며, 실행한다. 그렇게 영혼은 육신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영은 인연을 따라 변하고 있으며 재구성되고 있다. 이렇게 이생의 경험정보는 내생으로 전달된다. 다만 언어분별로 형성된 개념정보들은 다음 생을 맞이하면서 모두 사라진다. 대신 교육과 문화를 통해 집단적으로 전승한다. 그 외의 정보들은 영혼(개령)이 어느 방향으로 다음 생을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할 동력(업력 혹은 원력 등)을 제공한다. 개령은 의식적(有爲)으로 마음(의지와 욕구) 따라 업을 짓지만, 대령은 무의식적(無爲)으로 기운 따라 움직일 뿐이다.
‘천지의 식(識)’이 ‘응용무념의 도’로서 작용한 것은 대령의 작용이다. 반면 영혼이 개별의식, 즉 개령으로 작용할 때, 이를 ‘영식(靈識)’이라고 한다. 특히 죽은 영혼을 ‘영가(靈駕)’라 한다. 영식은 전생의 업(業)을 따라 내생을 이어가므로 ‘업식(業識)’이라고도 부른다. 불가 전통에서는 영혼을 위한 천도재(薦度齋)를 지낸다. 인연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천도재를 지낸다면, 그 공덕으로 영가의 영로가 밝아지고 묵은 업장도 소멸될 수 있다. 영가는 착심을 따라, 업력(業力)에 끌려 내생을 맞이한다. 청정일념이 된다면, 서원일념으로 원력(願力)을 따라 다음 생을 선택할 수 있다. 정산 종사는 “마음에 분별이 없으면 자성에 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지혜단련 16절)”라고 하였다. 마음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개령에서 대령으로 돌아가는 공부와 함께, 대령에서 개령을 활용하는 공부를 병행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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