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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삶의향기]‘코로나 보릿고개’를 슬기롭게 이기는 힘
[새전북신문][삶의향기]‘코로나 보릿고개’를 슬기롭게 이기는 힘
마음인문학연구소2021-05-20

코로나19 사태가 1년이 넘어가면서 어렵사리 생업을 이어가던 가게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모처럼 찾은 식당 문에 붙어 있는 ‘영업 종료’ 네 글자에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해졌다. 맛집으로 소문깨나 난 식당이어서 식사 시간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업이었는데 그새 폐업이라니, 훨씬 영세한 식당이야 오죽하겠는가.

최근 죽은말로 치부되었다가 새롭게 부활한 낱말이 있다. 바로 배고픔의 대명사 ‘보릿고개’다. 좀 더 정확히는 ‘코로나 보릿고개’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계절벽 끝에 서 있을 정도로 극심한 코로나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코로나로 생계 수단이 끊어진 가장은 식구들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곡식이 부족하던 옛날, 작년에 농사지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햇보리는 아직 익지 않은 봄철 이맘때는 지독한 굶주림을 견뎌야 했기에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보릿고개라고 불렸다. 지금이야 살랑대는 봄바람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보리밭이 관광객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풍경이 되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식량이 부족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심지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산과 들의 온갖 풀과 뿌리는 물론, 솔잎이나 소나무 속껍질 따위를 멀건 죽에 섞어서 먹다 보니 소화가 안 되어 변비에 걸리기 쉬웠다. 그래서 일을 볼 때면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나오기 일쑤였는데, 이 때문에 보릿고개를 ‘피고개’라고도 했으며,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겨났다.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보릿고개를 겪으신 부모님은 식사 때마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라며 실수로 흘린 밥알 하나도 다 주워 먹게 했다. 또 마른밥그릇을 수저로 긁어먹으면 “복 달아난다”면서 식사 끝에는 반드시 밥그릇에 물을 부어 남은 밥알을 깨끗이 말아 먹도록 했다. 이렇게 식사 끝에 밥그릇에 물을 부어 먹으면 설거지도 훨씬 편해진다. 어릴 적부터의 식습관 덕분에 몇 해 전 우연히 발우공양을 접했을 때 발우를 씻은 물을 거리낌 없이 마시고 깔끔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가르침 덕택에 음식뿐 아니라 물, 전기 같은 것도 아껴 쓸 줄 아는 마음도 생겼다.

그런데 급격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먹을 것 입을 것이 흔전만전해지자 씀씀이가 헤퍼졌다. 음식을 남겨 버리는 일도 잦아졌고, 아직 쓸 만한 데도 버리고 새로 구입하는 물건이 많아졌다. 내 배부름에 겨워 남의 배고픔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코로나 보릿고개는 이러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진안 마령초등학교에는 일곱 그루의 이팝나무 노거수가 담장을 따라 자라고 있다. 보릿고개를 견디지 못하고 굶어 죽은 어린 자식들을 ‘아기사리’ 터에 묻고, 부모들이 심은 이팝나무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하얀 꽃을 고봉밥처럼 푸지게 피우는 이팝나무처럼 죽어서라도 배불리 먹기를 바랐던 부모의 절절한 심정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마는, 감히 헤아리건대 주린 배를 안고 눈앞에서 죽어간 어린 자식은 아기사리 터가 아니라 부모의 피멍 든 가슴에 묻혔을 것이다. 자신 또한 오랜 굶주림 탓에 부황증에 걸려 살가죽이 누렇게 들뜬 채로 손톱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땅을 파헤쳐 자식을 묻었을 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팝나무에서 하얀 싸라기 같은 꽃들이 흩날린다. 이팝나무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시절, 밥알 몇 개 먼저 맛봤다는 오해를 받고 서러운 나머지 목을 맨 며느리의 애달픈 사연이 얽혀 있다. 그 착한 며느리의 무덤가에서 자라났다는 이팝나무는 하얀 이밥 같은 꽃을 수북수북 피운다. 배고픔의 한이 피운 처연한 꽃이다.

지금은 한창 모내기 철이다. 이팝나무가 꽃을 풍성하게 피운다는 것은 토양이 수분을 넉넉히 머금고 있어, 그 해 농사가 풍작이 될 것임을 알려주는 뜻이라고 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팝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웠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수챗구멍의 밥알 하나조차 허투루 하지 않았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자. 그리고 “배고파 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아는 법”이라면서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한 나눔과 배려에 누구보다 후했던 그 마음으로 코로나 보릿고개를 슬기롭게 넘어보자.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713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