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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신문-기고] 꿈과 희망의 ‘진정한 교육열’기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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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10-10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특집] 꿈과 희망의 ‘진정한 교육열’기대해
교육열은 한국사회에만 존재하는 고유의 것은 아니다. 교육열의 저변을 이루는 동기체제는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인 것이나, 교육열이 현실에 표현되는 방식에 있어 한국 특유의 특색을 띤다. 그 열의가 오직 국·영·수와 같은 주요 교과목 학습만을 향해 있다는 점, 대학 진학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향한 교육 열의로 모두가 들끓고 있다는 점으로 특징지어진다. 입시열이라 바꿔 말해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 열기가 사회전반적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을까?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 몇 가지 짚어보려 한다.
인성부족 주요 교과목 중심의 대학 입시에 온 국민이 집중하는 풍토는 인성교육의 소홀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입시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교과목들이 평소 가르쳐질 것이고 학생들은 그것을 중심으로 교육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에 나오지 않고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교과목들은 무시되거나 강조되지 않으며,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런 것들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걷는데 들이는 시간과 체력이 아까우니 일일이 자가용으로 등하교 시켜주고, 집안 심부름은 일절 시키지 않으며, 친척들과 만나는 집안 행사보다 학원 참석을 더 챙기는 풍토가 형성된다.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은 우선 관심사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시험에 나오는 교과목 중심으로 가르쳐지고 배워지는 것은, 시험에 나오는 것들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은 은연중에 무시하게 만들 가능성을 크게 만든다.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가치들을 모르게 하고 배려, 감사, 공익심, 도덕성, 공감 능력과 같은 인성의 발달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한다. 교육 현장의 교사들이 우리 청소년들의 ‘자발성 부족과 타인배려능력 결여’, ‘기초생활습관의 부재와 지나친 이기주의’, ‘분노조절의 어려움’, ‘욕의 생활화’ 등을 시급한 인성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출세와 부귀의 수단으로서 교육적 관심은 과잉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인간됨을 위한 교육에는 소홀히 한 결과, 우리는 날마다 매스컴을 통해, 친구들을 상습폭행하고 따돌리며 자살에 이르게까지도 하는 무감각한 아이들을 만난다. ‘한국청소년 핵심역량 진단조사’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세계 꼴찌나 다름없이 나온 것은, 따라서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학업스트레스 증가 최근의 여러 통계 자료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학업스트레스가 고위험군에 있음을 심각하게 보여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1년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의 고등학생 7,2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개국 청소년 건강실태 국제비교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최근 1년간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답한 비율이 87.8%로 4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부문제'(72.6%)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중국 59.2%, 미국 54.2%, 일본 44.7%에 비해 스트레스 강도가 훨씬 높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5~19세 청소년의 전체 사망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13.6%에서 2011년 36.9%로 급증했는데, 10대가 자살을 택하는 주요 이유는 성적비관과 입시스트레스다. 자살을 생각해 본 10대들 중 절반 이상(53.4%)이 “성적, 진학문제로 자살충동을 느껴봤다”고 대답한다. 이렇듯 현재의 한국은, 성적이 낮은 학생뿐만 아니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까지 모두가 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과중한 학업과 입시경쟁으로, 청소년들이 무기력한 감정과 스트레스에 무방비 노출되어 있다. 평소 짜증과 답답함, 좌절감 등의 부적 정서를 많이 느끼고, 시험이 가까워오면 무척 긴장되고 불안해 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학교 안팎에서 학생이 경험하는 교육과정을 시험 준비과정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OECD 국가 중 매년 수학, 읽기, 과학에서 최상위 성적을 보이고 고등교육 이수율은 2007년 이후 계속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앞의 통계지표들이 보여주듯 우리 청소년들의 학업스트레스는 점점 극으로 치닫는 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는 학업스트레스가 자살 및 폭력과 같은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현 위기를 돌파하고자 ‘인성교육을 통한 자살예방’과 같은 대책을 마련했지만, 국·영·수 중심, 수능 중심의 교육 열기가 그대로 존재하는 한 지금과 같은 병리현상은 그대로 지속될 것이다.
내재적 동기 감소 PISA와 TIMSS 등을 통해 나타나는 한국 청소년들의 학업성취는 매우 우수하다. 그러나 정의적 영역에 대한 평가 결과는 매우 상이하다. 이를테면 PISA 2006 과학의 경우 전체 57개국 중 흥미는 56위, 자아개념은 56위, TIMSS 2011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수학 흥미가 전체 50개국 중 50위, 자신감 49위, 과학 흥미는 50위, 자신감은 48위이다.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지적 성취 결과와는 달리, 그 교과에 대한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on)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정의적 척도는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 성취도 수준은 높지만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부족하고, 해당 교과목에 대한 흥미도 별로 없으며, 혼자서 주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자기주도성도 매우 떨어진다는 모순적인 결과이다. 막상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대학교육 단계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 내재적 동기란 사랑의 욕구, 흥미, 호기심 등 내적이고 개인적인 요인들에서 유발된 동기를 가리킨다. 활동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고,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몰두하게 만든다. 과제 자체나 그것이 가져다 주는 성취감을 즐기며, 활동 자체가 보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처벌이나 유인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외재적 동기란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한 요소들에 의해 동기화되는 것으로, 좋은 성적, 경제적 이익, 타인 혹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기이다. 따라서 외재적 동기를 가진 학생들은 쉬운 내용 또는 자기에게 유리한 과목만 공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내재적 동기를 가진 학생들보다 더 좋은 학업성적을 보이기도 한다. PISA나 TIMSS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매우 뛰어나지만 그 과목에 대한 자신감, 자아개념, 흥미는 거의 꼴찌인 현상들이 바로 그 실례이다. 물론 외재적 동기를 가지고 학습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예컨대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이어지는 선행학습은 학습효율을 크게 떨어뜨린다. 각종 정의와 공식을 암기하기도 벅차, 실생활과 접목된 교과 내용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낄 틈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 보자. 어떤 영역에서 현재는 잘 못한다고 하더라도 흥미와 관심을 갖고 혼자서 열심히 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경우와, 현재는 잘 하지만 별로 흥미도 없고 앞으로 하고 싶지도 않아 염증을 내는 경우 그 차이가 어떠하겠는가. 초·중등 교육의 최종 목적이 결국은 대학에 진학했을 때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갔을 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 볼 때, 지금의 치우친 교육 열기는 분명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희망과 꿈의 부재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뭘 해야 해요?’라고 반문한다. 계속되는 입시위주 경쟁으로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 매몰되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의 가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없다. 꿈과 희망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는커녕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지금과 같은 한국의 교육제도, 교육 열기 속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입시에 나오는 교과목 중심으로 교육을 받게 됨에 따라 획일적인 교육과정 속에 암기 위주로 공부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학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학업지도는 각 학교의 재량에 맡기게 되는데, 학생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듯 교과목을 골라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역사, 무용, 드라마, 경제, 요리, 정보통신, 외국어, 관광, 음악 등 원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전문성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대다수가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하는 학교에 진학하여 똑같은 교육과정 속에 초·중·고등학교 12년을 보내게 된다. 자신이 진짜 원해서 하기보다 시켜서 하는 경우가 많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동안 내 꿈이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생각해 보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교육과정 속에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몸으로 체험해 보면서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계발해 나갈 기회가 드물다. 무슨 꿈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인문사회과학이라 부르는 사회, 역사, 철학, 윤리, 경제 등 인간과 사회에 관한 학문을 그저 달달 외울 뿐인데, 무슨 사고가 가능하겠는가?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 할 뿐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은 학업에 흥미를 잃고 컴퓨터 게임, 핸드폰 게임 등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점차 학습에 흥미를 잃고 게임에 파묻혀 지내는 삶. 당연히 자신의 꿈, 미래, 비전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진취성을 잃어가고 그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은, 병들고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여준다. ‘교육열’이란 ‘교육에 대한 열의’로서 교육열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지만, 지나친 교육열로 인하여 심각한 청소년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교육 열의가 오직 국·영·수와 같은 주요 교과목 학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대학 진학이라는 획일적 교육 열의가 사회전반적으로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한국 교육열의 문제로 지적하고, 청소년 인성 부족, 학업스트레스의 증가, 내재적 동기의 감소, 희망과 꿈의 부재를 대표적인 병리현상으로 제시해 보았다. 학교폭력·왕따 문제, 컴퓨터·스마트폰 중독, 타인배려능력 결여, 청소년 자살율 증가, 청년실업의 증가와 같은 여러 사회문제들이 결국은 상술한 병폐현상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기간 동안만 유효한 목표에 집착하고 있는 입시열 너머의, ‘진정한 교육열’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 하겠다. 우리의 이 뜨거운 교육열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환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김은진 교수(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http://www.wk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