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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신문-기고] 현대 문명사회와 마음의 전환 – 생명문화를 이루는 마음의 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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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05-19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특집기획] 현대 문명사회와 마음의 전환 – 생명문화를 이루는 마음의 성
영성적, 전일적 인간 지향에서 출발
우리대학 마음인문학연구소 의 연구 성과를 대중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연구소 소속 연구교수들의 을 연재한다. 인간의 존엄성, 마음, 감성 등에 대한 글을 통해서,스스로를 성찰해 보는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편집자
인간 문명의 역사는 야만으로부터 인간다움으로의 진보일까? 인간 문명의 발전은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 과 인간 자신에 대한 폭력적 지배 방법이 진보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2차 대전당시 망명 지식인으로서 “왜 인류가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계몽의 변증법』,서문)를 묻는다. 그에게 있어 인류 역사란 “파시즘에서 끔찍한 정점을 이루는 카타스트로프적인 진행과정”에 불과하고 “몰락의 논리에 따라 진행하는 고통의 연속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사랑을 망각하고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며 좀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고자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한다. 여기에 인간 문명의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다.
▲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김유동 역)』에서 애니미즘이 사물을 정령화했다면 산업주의는 혼을 물화한다 고 말한다.
일제 시대에 어린이 운동을 벌던 소파 방정환 역시 현대 사회의 삶은 “각자의 존귀한 본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든 생명체를 인간에게 귀속된 종처럼 인식하고 이용하고 학대한다”고 하여 문명제일주의가 지닌 폭력성, 부당성을 폭로한 바 있다. 한국의 창조신화도 보면 세상 의 고통이 이러한 지배 문명에 의해 생겨났음을 보여준다. 민속학자 손진태 선생 등이 1923년에 채록한「창세가 」에는 미륵님이라는 창조신이 등장한다.미륵님은 반고 신화처럼 서로 붙어 있는 하늘과 땅 사이에 구리기둥을 세워 천지를 개벽했다. 일월성신을 만들고, 하늘에서 금 벌레, 은벌레를 금쟁반과 은쟁반에 각각 받아 남자와 여 자를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미륵님이 창조한 태평 세상 에 느닷없이 석가님이 나타나서 미륵의 세상을 빼앗으려고 한다. 이에 미륵은 아직은 “내 세월이지 네 세월이 아니다”라고 말한다.이에 석가가 응수하여 말하기를 “네 세월은 갔다. 이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라고 도전을 한다. 석가의 도전에 미륵은 어쩔 수 없이 내기를 제안하는데, 내 기 종목은 셋이었다.병을 매단 줄을 동해 바다에 드리워 “누구 줄이 안 끊어지는가? 누가 여름에 강물을 얼어붙 게 할 수 있는가?누구 무릎에서 꽃이 피는가?”였다. 첫째 내기에서 석가의 줄이 끊어지고, 둘째 내기에서도 석가가 질 판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욕심을 놓을 수 없었던 석가는 마침내 반칙을 한다. 한 방에 누워 잠을 자면서 꽃 피우기를 하는 동안 미륵의 무릎에 핀 꽃을 꺾어 제 무릎에 꽂았던 것이다.
▲ 꽃을 들고 있는 미륵은 우주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한다.
결국 미륵은 석가에게 세월을 넘겨주기로 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때 미륵은 “더럽고 축축한 석가야. 네 세월이 되면 집집마다 기생 나고 과부 나고 역적 나고 백정 날 것이다. 말세가 된단 말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미륵은 승천하여 얼굴은 해와 달이 되고, 눈은 샛별이 되고, 코는 삼태성이 되고, 귀는 북두칠성이 되고, 배는 푸른 하늘이 되고, 몸은 대지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고통스럽고, 더럽고, 축축한 말세가 된 까닭을 이 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석가의 세상 은 인간의 지배욕과 불의(不義), 에고의 확장으로 얼룩진 문명세상이다. 여성을 노리개로 기생을 만들고, 전쟁으로 과부를 만들고, 권력에 저항하는 자를 역적으로 만들 고, 계급차별로 천민 백정을 만드는 세상이다. 이와 반대로 미륵의 세상은 자연 생명 자체가 살아 움직여 다양한 세계를 만드는 생태적 세상이라 할 것이다. 국문학자 조현설은 이 내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싸움은 ‘꽃피우기’라 말한다. 미륵님은 자연 자체고, 그의 꽃 피우기는 자연 안에 이미 있는 능력이었다는 것이다. 미륵님을 쫓아내고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하는 석가님 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상징하고, 미륵님은 문명화된 세계야말로 ‘더럽고 축축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자연의 우주생명 그 자체라 할 것이다.현대 문명사회의 생태 파 괴, 환경오염, 전쟁과 폭력, 인간의 고통은 우주 생명에 대한 무지와 지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피부를 경계로 삼아 피아(彼我) 를 구분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자 타자들을 도구로 삼지만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끊임없는 생멸의 우주 순환과 변화 속에서 합치와 다양성을 이룬다. 인간 은 자기 생명의 실체를 모르기에 자신을 전체로부터 분리시키고, 인간과 자연을 살해함으로써 두려움과 불안, 고통에 휘말려 왔으며, 현대문명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반생명적인 개발시스템은 전체 생명의 존재기반을 파괴해 왔다. 몰락으로 치닫는 현대 문명의 정점에서 이제 문명의 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동서양의 많 은 사람들이 제기해 왔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무풍지대 같다.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생명문화로 문명 전환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이는 곧 마 음의 혁명이자 의식의 전환으로서, 전일적 생명의 세계 관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물리학자 장회익은 살아있 음과 죽음의 구분을 낱생명이 온생명과 정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마치 잎이 살아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잎(낱생명)이 나무(온생명)에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의해 결정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지금까지 그 나무라는 개념을 결여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창조 신화가 상징하듯이 “얼굴은 해와 달이 되 고, 눈은 샛별이 되고, 코는 삼태성이 되고, 귀는 북두칠 성이 되고, 배는 푸른 하늘이 되고, 몸은 대지가 된 것”처럼 우주 삼라만상이 한 몸으로서 모든 개별의 나뭇잎 이 전체인 나무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의 의식은 우주 생명과 하나된 전일적 의식이자 ‘큰 나’로서의 대아적 마음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장회익은 이 ‘큰 나’를 ‘온우리’로 표현한 바 있다.우 리의 삶이 같은 목표를 지향해서 협동하고, 의미 있는 삶 의 단위를 형성할 경우 나는 나의 범위를 넓혀 전체 집단 을 새로운 하나의 삶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인식된 새로운 주체가 바로 ‘좀 더 큰 나’인 ‘우리’ 개념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확장은 비단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그 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포괄적인 생명의 체계인 ‘온생명을 나 속에 포함시키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런 일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온생명은 동학의 ‘한울’ 의미와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한울의 ‘한’은 ‘크다’는 뜻이고, ‘울’이라는 뜻은 무한한 시공적 개념을 뜻한다. 즉 울이라는 것은 우주의 전체를 가리키는 ‘우리’라는 뜻으로 ‘큰 나’라는 뜻이 되고, 이를 한자로 말하면 대아(大我)라는 뜻이 된다. 김기전은 새로운 생명문화는 “이 우주 전체를 통하여 비로소 그 사이의 맥락을 인정하고 계통을 고려할 것인 바 그 중의 어느 일부를 취하여서 피(彼)라고 하고 또 아 (我)라고 할 수가 없으며, 이 피(彼)같고 아(我)같은 삼라 만상의 가상(假相)한 꺼풀 밑에는 이 우주의 전체적 생명 의 대조류(大潮流)가 끊임없이 흘러 돔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 말한다. 이는 마치 우리 사람의 혈액이 개인 몸의 세포와 세포 사이를 흘러 도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주 생명의 큰 조류와 더불어 융화함을 얻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우주와 하나 된 큰 감동으로, 큰 순실(純實)로, 큰 위대로써 최선의 삶을 다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세계 의 억조창생 모두 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야말로 비로소 비할 바 없는 자유가 있고, 교 만 없는 사랑이 있으며 거리낄 것 없는 희열이 있게 되는 데, 이로부터 전일적 생명관에 적합한 사회정치시스템을 만들어 갈 것을 그는 촉구했다. 피아의 구별을 넘어서는 전일적 마음으로의 전환은 지 고한 의식의 발현 상태와 같고, 명상으로부터 얻어지는 지혜의 빛과도 같다.물론 이러한 우주 본원의 전일적 마 음은 명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 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언제나 자신 안에서 작용하고 있 다. 다만 그 힘이 에고에 가려져 미약할 뿐이다. 우리 자 신이 외면적 감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고, 마음이 늘 분 산되어 있어서 우주와 하나인 본원적 마음의 힘을 잘 알 지 못할 뿐이다. 산만한 표층의 마음이 아니라 심층의 마음깊이에 이르 을 때 그 마음 깊이에서 우리는 본원적 마음을 발견하 게 된다.그 심층에 이르면 우주와 나,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게 된다.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체험, 그 일체가 하 나로 통하는 마음은 곧 기쁨이며 환희 그 자체이다.이는 자연생명과의 교감에서도 체험된다. 서산대사가 지리산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고, 초의 선사가 월출산 보름달을 보고 깨우쳤듯이 자연은 우주의 전일성을 드러내 준다. 현대 문명의 전환은 각자의 성적이고 전일적(全一 的)인 인간으로의 지향에서 출발할 것이다. 성적이고 전일적인 인간을 데이비드 호킨스는 ‘우주 본원으로서의 성을 회복한 자’라 말한다. 우주의 본원이란 ‘형상이 없으면서 본래의 무한한 힘이자 무한한 잠재성’이고, ‘신성한 적 활동’이라 명명될 수 있다. 일찍이 서산 대사는 우주의 본원을 ‘일물(一物)’이라 표현한 바 있다.일물(一物)이란 ‘밝고 신령한 것(昭昭靈 靈)’, ‘생멸이 없고 이름 지을 길이 없으며 형상을 그릴 수 없는 것’이라 했다.그리고 그는 이 일물을 ‘○’의 일 원상(一圓相)으로 그림을 그려 나타냈다. 이는 원불교의 일원상과도 맥이 닿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마음의 영성적 전환은 현상적 마음을 버릴 것 없이 곧바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지키는 수본진심(守本眞心)’에 두어져 있다.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일체의 생명은 모두 이 마음으로 인하여 살아간다. 전일적인 본연의 마음은 자신의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 모든 존재에서 작용되고 있다. 이를 자각한 자는 우주생명공동체로서 생태적 삶을 실천하며 몸의 온전한 순환과 균형을 통해 각자의 ‘다양한 영성’ 을 발휘할 것이다.
▲ 삶이란 이 순간의 완전한 표현이다.이 순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우주 생명과의 합치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우주 생명의 전일적 마음을 완전하게 표 현할 새로운 문명의 출발이요,희망이 자라날 중심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하나 된 우주 본원의 실재(theOneUniverse of Reality)이자 영성적 주재임을 자각하여 진심(眞心)과 합하고, 현상적 에고로부터 매순간 전환을 이룰 것이다. 이는 곧 에고뿐만 아니라 사회통제에 의한 마음작동을 자 각하여 이로부터 거리를 둠과 동시에 새로운 영성의 힘으 로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라 할 것이다.
정혜정 교수(마음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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