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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기고] 한국인의 화병와 사회적 정의
[전라매일신문-기고] 한국인의 화병와 사회적 정의
마음인문학연구소2015-02-09

한국인의 화병와 사회적 정의

 

 

2015년 02월 09일 [(주)전라매일신문]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의학적으로 진단하기 힘든 ‘화병’이라는 것이 만연해 있다. 그 마음의 병은 명치가 콕콕 쑤시는 것처럼 물리적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분노와 화가 쌓여서 결국 심각한 마음과 몸의 병까지 이르게 된다. 부조리한 현상에 방치되는 것,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맞지 않은 인간관계를 오랜 시간 참다 생기는 것 등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로는 시어머니와 갈등 관계에 있는 며느리라든지,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자식들 같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는 소위 ‘갑을’ 관계에서 분노가 일어난다. 한 개인이 사회적 부패와 부조리와 부정의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지속될 때 분노는 고착되고 ‘화’라는 병으로까지 악화된다.

 

 

세월호 이후의 사태를 바라보는 복잡한 마음에서 물어 보자. 우리가 사는 사회 환경에서 제대로 ‘치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참사 이후 심리 상담사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생존자와 피해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며 활동해 주고 있다. 수고해 주는 사람들이 참 고맙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비극적으로 일어난 일의 사후 해결에 최선을 다해서 임해야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의 없는 사회에서의 정신적 치유의 행위는 미봉책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무고한 개인이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생명 경시, 대충주의, 배금주의, 안전 불감증 등으로 계속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동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이들은 볼 때 상처는 더 커진다. 사람들의 진심은 왜곡되고, 우리 사회의 ‘을’들은 서로를 향해 비뚫어진 방식으로 상처를 주면서 엉뚱한 방향의 화풀이를 한다.

 

 

 

얼마 전 프란체스교 교황이 스리랑카 방문 중 한 이야기를 읽고 공감을 했다. 오랜 세월 동안의 내전으로 인해서 정신이 피폐해진 사람들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였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는 치유와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의를 위해서는 왜곡된 역사의 진리를 알아야 하고, 바로 그렇게 세워진 정의 위에서만 사회의 평화와 그로 인해서 고통 받는 개인들의 마음 치유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도 언제든 피해자의 가족이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사건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보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사회적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환우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감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무뎌진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삶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눈 앞에 닥친 불을 끄는 것에 급급하게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바쁘게 사는 것’이 좋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쳐 버린 채 관성적으로 성찰 없이 바쁘게 사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런 삶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고,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 즉 ‘나는 성공으로 향하고 있다’는 자기 착각 속에 살아 간다.

 

 

상처 받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 받지 못하고, 서서히 잊혀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 세월 호 사건 이후 남은 가족들은 잊혀 지는 것이 두렵다는 말들을 자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란색을 보면서 ‘잊지 말자’고 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주위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면 지겹다고 외면한다. 그것을 넘어서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험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각자의 ‘갑’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우리의 ‘을’들에게 주지 말자.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윗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을 걱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 더 낮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배려와 보살핌이 향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정의이고 우리 모두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 마음의 치유를 위한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노력은 공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시대 화병 환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최정화/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