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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기고] 고통을 이겨 낸 사람의 특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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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01-25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고통을 이겨 낸 사람의 특징
2015년 01월 25일(일) 20:21 [(주)전라매일신문]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 ‘고통’이라는 문제와 직면하게 될까? 대부분의 경우 ‘몸’의 통증과 죽음의 예감을 통해서이다. 암에 걸렸을 때,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몸이 하나 둘씩 말을 듣지 않고 잦은 병에 시달리게 될 때, 그리고 노년기에 몸의 쇠퇴를 경험하고 죽음을 직감할 때 그러할 것이다.
어르신들은 종종 마음은 이팔 청춘인데 몸으로 인해서 나이가 든 것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몸이면서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들고 늙어가는 몸 앞에서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모든 것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무상감, 그 변화 속에서 나 역시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가 가져오는 뼈아픈 깨달음이 그것이다. 아프고 늙어가는 자연법칙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며, 우리의 아픔을 대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이 환원할 수 없고 대체될 수 없는 내 고유의 영역에 속함을 느끼게 된다. 고통 앞에서 숙연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처절하게 묻게 된다. 수많은 예술 작품과 철학적 통찰들은 고통 안에서 인생의 민낯을 경험한 후의 산물이 아닌가.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한 사람들을 보면, 고통과 싸우기 보다는 고통과 친구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이다.
얼마 전 개봉된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은 인간의 고통과 그것을 넘어서는 의지를 생각하게 해 준 영화였다. 쾌활한 영국 젊은이가 친구와 함께 힘차게 자전거 폐달을 밟으며 고풍스러운 대학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젊은이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진학 중인 전도 유망한 학생인데 루게릭 병이 악화되면서 전신이 마비돼 간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 그는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다. 몸의 근육들이 서서히 마비되어서 걷거나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수술 후에는 말까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몸이 가져온 재앙에 빠져서 크나큰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호킹처럼 두뇌가 명석한 사람은 몸과 정신이 가져오는 불일치가 더 커서 그 절망이 상당했을 것이다. 호킹은 몸이 서서히 굳어 가게 되고 언어 능력을 잃어가는 그 지난한 고통의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부인 제인 호킹이 쓴 책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나는 호킹이 고통을 극복하는 비결에 초점을 맞춰서 감상했다.
그에게는 특별한 세 가지가 있었는데 열정을 쏟는 일, 사랑과 우정, 그리고 유머였다. 천체 물리학은 그의 직업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으며 동시에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그러나 아내 제인 호킹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그리고 동료들의 이해와 우정이 없었다면 그 모든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부부의 사랑은 남녀의 열정을 넘어서서, 우정과 존경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에 오래 갈 수 있었다.
슬픔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스티븐과 제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 오고, 부부 관계가 끝을 맺기도 한다. 각자에게 새로운 사랑이 왔을 때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는 데에는 서로의 발전과 행복에 대한 기대와 존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킹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바로 유머 감각일 것이다. 애당초 유머란 무엇인가? 고통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것,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강인함,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부여할 수 있는 객관화된 힘, 그리고 나를 보살펴 주는 사람들을 잠시라도 즐겁게 해 주는 배려이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고통 속에서 깨어 있는 생명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고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감지하며 인간 고유의 성취능력을 경험한다. 고통은 ‘인간에게 부여된 그 어떤 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면, 고통의 시기에 그것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도록, 절망적인 고통의 감정에 우리의 일상이 지배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고유성’을 찾아내는 힘으로 그 고통과 사귀어야 할 것 같다. 스티븐 호킹의 인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다.
(최정화/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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