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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기고] 불안이라는 마음의 벌레와 희망 찾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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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01-18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불안이라는 마음의 벌레와 희망 찾기
2015년 01월 18일(일) 19:35 [(주)전라매일신문]
ⓒ (주)전라매일신문
실직한 가장이 재기에 실패했다. 부인과 두 딸들에게 수면제를 마시게 한 후 살해하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으려다가 미수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이다.
보유 자산이 적지 않은 중산층 남성이 스스로의 상황을 비관한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은행에서 진 빚으로 주식 투자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명문대를 졸업한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엘리트, 거기에다가 빚을 처분하더라도 자산 소유가 적지 않은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권위적인 가장이 위기 상황에서 보인 실질적인 나약성, 중산층의 상대적인 빈곤감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살기 힘든 우리 시대의 위태로운 모습을 반영하는 복합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의 중요한 하나의 단면은 이 비극적인 가장의 마음이다. 자살이 미수가 되어서 경찰에 잡혔을 때 스스로 살해의 이유를 ‘불안’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이유로 단언하기 힘들지만 이 사람이 가진 문제는 지난 시기 몇 번의 실패로 인해서 좌절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상황, 즉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단순한 실존 상황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불안이라는 마음의 벌레는 희망 없음에서 서식한다. 그 무엇도 생명보다 우위에 놓일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불안이 우리의 삶을 갉아 먹고 있다.
같은 시기에 유행하고 있는 영화 ‘국제 시장’의 아버지 상을 예로 들면서,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삶을 헤쳐 나갔던 세대의 가장에 비해서 오늘날의 가장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너무 편하게 자라서 나약해지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본다. 아버지 세대들의 강인함과 젊은 가장들의 나약함으로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요즘’ 가장들이야말로, 가장이 되기 위해서 전의 세대들은 짐작할 수도 없는 성취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에 시달리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전 세대보다 높아진 가장의 요구에 맞추어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빚, 실직과 주식 실패를 제외하고 그에게는 행복해야 할 객관적인 조건들이 적지 않았다. 귀여운 딸들, 아내, 자가 소유의 고가 아파트, 명석한 두뇌와 같이 삶을 밝게 해 줄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이 그 모든 것들을 뒤덮은 이유는 무엇일까? 비극적인 사건으로 치달은 이유를 어쩌면 당사자도 정확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면 또 다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고 스스로의 인생과 그가 경제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의 삶을 희망이 없는 암울한 미래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높아진 가장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완벽적인 성향에서 온 중압감과 지나친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는지 추측해 본다.
중년에 들어서면서 재취업을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자영업을 하더라도 그 전에 몸담았던 직업과의 수준 차이로 인한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어린 자녀들이 커가면서 교육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은 커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더라도 전보다 나아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내일은 오늘보다 못하다는 절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럴 때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앞으로 노력해 보더라도 더 나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리고 너무 잘 해내야만 하는 삶의 중압감 속에서 살아 온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희망 없음은 사람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가 등장한다. 판도라는 제우스 신으로부터 상자를 열어보면 안된다는 명령과 더불어 선물을 받았다. 두려움보다 더한 것이 호기심일 때가 있는 법, 판도라는 상자 속에 든 것이 궁금해서 결국 명령을 어기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 든 것들은 슬픔, 고통, 가난, 전쟁과 같은 것들이었다. 놀란 판도라가 급하게 상자의 문을 닫았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이 신화는 우리에게 인간이 겪는 수없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는 것은 힘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떠한가? 좀처럼 희망을 찾기 힘든 외부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은 무엇이 희망이고,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암울한 시기, 소박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희망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없다면 나 스스로 누군가의 희망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때이다.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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