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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기고] 자기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 본래 마음을 회복하자
[전라매일신문-기고] 자기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 본래 마음을 회복하자
마음인문학연구소2014-11-30

자기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 본래 마음을 회복하자

 

 

2014년 11월 30일(일) 19:19 [(주)전라매일신문]

 

우리의 마음작용은 경계를 따라 일어났다 사라진다.

경계는 곧 인식대상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흔히 여섯 가지(色, 聲, 香, 味, 觸, 法)로 인식대상을 설명하곤 한다.

이는 6가지 인식 기관에 따른 것이다. 즉 눈(眼)으로 색상을 보고, 귀(耳)로 소리를 듣고, 코(鼻)로 향내를 맡고, 혀(舌)로 맛을 식별하고, 몸(身)으로 대상을 감지한다.

 

 

 

 

그리고 마음(意)으로 법(法)을 인식한다. 이를 다시 외경과 내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5가지는 외경으로 몸의 경계가 된다면, 마지막의 법경(法境)은 내경으로 마음의 경계가 된다.

특히 마음의 인식대상이 되는 법(法)은 모든 경계와 그 대상에 대한 인식까지 포함한 것은 매우 폭이 넓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마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흔히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마음대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데로 보는 것이다. 자기 식대로 이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위주로 세상을 보는 의식을 ‘자아의식’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인식(思量)하며, 자기 위주로 세상을 세우고 허물고 하는 것이다(一切唯心造).

 

 

 

 

그런데 자기 위주의 마음작용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것은 근본적인 어리석음(無明)에서 온다. 즉 본래 자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에도 그것을 자기라고 집착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로부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위주로 보고 그로부터 스스로 얽매여 사는 것이다.

 

 

 

 

스스로 요란해지고 스스로 어리석어지고 스스로 글러지는 것이다. 바둑에서 훈수를 둔다는 말이 있다. 직접 바둑을 두는 당사자보다 곁에서 보는 사람이 그 수를 더 잘 본다는 말이다. 평소에는 명석한 판단과 바르게 취사하던 사람도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자기 욕심에 가려서 판단이 흐려지고 일을 그르치곤 한다. 자기 위주로 판단하고 자기 위주로 취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일의 옳고 그름(是非)을 먼저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이롭고 해로운 것(利害)만을 먼저 따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집착하고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풀어가려는 의식을 ‘본능적 무의식’이라 한다면, 자기 위주의 의식(자아의식)에서 벗어난 근본의식이 있는데, 이를 ‘본성적 무의식’이라 할 수 있다. 본성적 무의식은 자아를 떠나 있으므로 ‘무아(無我)’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경계를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작용이 아니라 그 마음작용의 이면에는 이미 갖추어져 있는 마음바탕이다. 이는 현상적인 마음작용과 구분하여 본래 마음으로 이를 본성이라 한다. 원래부터 이기적인 사람은 없다. 경계를 대할 때 그 인식의 범위가 자기 위주로 좁아지면 결국 이기적이 되는 것이다.

 

 

 

 

자기 위주의 자아의식에서 벗어나 근본의식인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자기 위주의 왜곡되고 편협한 삶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 보자.

 

 

장진영 교수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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