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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기고] 경청과 공감
[전라매일신문-기고] 경청과 공감
마음인문학연구소2014-07-14

경청과 공감

 

 

 

 

우리는 구약 성경 <욥기>의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보고 있다. 욥은 아무런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는 의인이다. 온 몸에 부스럼이 난 처참한 몰골의 욥 앞에 친구들이 나타났다. 친구들 말의 요지는, 욥이 받는 고통에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함축된다. 이런 친구들의 말이 오히려 욥의 마음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신까지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 친구들 중 아무도 자신에게 진정 어린 연민의 공감대를 이루지 않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욥은 하느님을 원망한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묻어 버리고”, “어이없이 채찍에 맞아서 숨져가는 절망에 빠진 이를 비웃는”(9, 22-23) 하느님을 향해 하소연한다. 욥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아는 한 스스로의 잘못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죄’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까닭 없는 고통의 이유를 하느님께 따져 묻는다. 친구들이 자신에게 걸고 들어가는 죄가 사실은 그 스스로에게 없음을, 즉 고통의 무고함과 의미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인생의 시련기에 욥과 욥기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갈등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하다. 우리에게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간의 잘못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재단하며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잘난 척 하더니 그럴 줄 알았어.’하며 고소해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무고한 고통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왜 죄 없는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인생 전반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 ‘신’과 ‘진리’에 대한 회의까지 가져온다. 인간의 고통을 신이 내리는 징벌로 간주하거나 인과응보로 설명하는 것은 전통적인 신학적 해석이다. 이러한 설명은 우리의 고통을 완화시키지 않는다.

 

 

 

주위에 시련 당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나도 겪어 보았는데 지나갈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식의 교훈적인 그럴싸한 조언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통은 유형화 될 수 없을 만큼, 개개인에게 독특한 형태로 다가온다. 수십억의 다양한 인생이 있듯이, 고통 또한 개별적이고 특수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고통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면 된다. 나의 경험과 인지에 한정해서 타인의 고통의 경험을 제한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애정 어린 연민과 공감은 단순히 구호가 아니다. 제대로 된 경청 뒤에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최정화(원광대학교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