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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칼럼] 텅빈 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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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12-06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마음인문학칼럼- 텅빈 마음
2015년 12월 06일(일) 20:04 [(주)전라매일신문]
어린 아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참 묘한 마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아이가 서로 울고불고 싸우다보면 나중에는 자기들이 왜 싸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가끔 벌어집니다. 화는 누그러들고 아직 싸우던 감정이 남아 씩씩 거리지만 점차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순진하고 맑은 마음이기 때문에 생각의 찌꺼기가 남지 않고 싹 비워지기 쉽습니다.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도 황당하기도 하죠. 그런데 어른이 된 후로는 그런 경험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음에 생각의 흔적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이 텅 비는 느낌이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만일 텅 빈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면 ‘좋다 싫다, 밉다 곱다.’는 분별의 생각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명확하게 인식되며 새로운 기운이 솟아날 것입니다. 텅 빈 마음은 태풍의 눈과 같아서 확장될수록 생각의 집중력 또한 더 커집니다. 그래서 텅 빈 마음은 생각의 근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매일 체험하며 삽니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잠에 곯아떨어집니다.
피곤하면 피곤할수록 주위환경과 상관없이 깊이 잠에 빠지죠. 세상 모르게 자다가 아침이 돼서 일어나면 그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몸이 어느 정도 회복돼 있습니다.
무엇을 할 때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한 그 시간이 몸이 회복되는 더 좋은 시간인 것은 우리 마음이 텅 비기 때문입니다. 비록 잠을 오래 잔다고 해도 꿈속에서 헤매다 일어나면 잠을 자도 안 잔 것 같이 피곤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몸은 잘 만큼 자면 스스로 눈이 떠집니다. 꼭 언제 일어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회복이 되면 몸은 일어나서 활동할 준비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텅 빈 상태는 허무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에너지가 마치 호수처럼 가득한 상태인 것이죠. 굳이 표현하자면 텅 비어 고요하고 고요하면서도 밝게 아는 마음의 상태라고 해서 적적성성(寂寂星星)이라고도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마음의 상태가 존재합니다. 태풍에는 태풍의 핵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본래 모두 적적성성함이 있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알고 그 상태에 머물러서 본심을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본심을 잃고 관념과 감정에 빠져 행동을 하는 것과 적적성성한 상태에서 나온 행동의 결과가 달라지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군에 끌러가기에 앞서 “뜻대로 하소서” 하신 것처럼 위대한신 분들은 중요한 결정에 앞서 자신을 텅 비웠습니다.
우리도 어떤 갈등의 상황을 당한다면 결정하고 행동하기 전에 일단 멈춰서 텅 빈 마음을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더 분명하고 명확해질 것입니다.
/원광대학교 후마니타스학부 조교수 김세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