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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칼럼] 몸과 대화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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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11-02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마음인문학칼럼- 몸과 대화하기
밭농사를 지을 때 봄이 오면 갖가지 씨앗을 뿌립니다. 고추씨와 오이씨도 심고 깨도 심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싹이 나고 고추와 오이와 깨가 자랍니다. 열심히 가꾸지만 밭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소출의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것이지요. 오이를 심으면 더 많이 열리고 적게 열릴 수는 있어도 거기에서 고추가 열릴 일은 없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인과의 법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의 밭에서는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겉으로는 반가운 척하면서 속으로는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되죠. 짜증을 내다가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흉을 보기도하고, 점점 상황이 거북해지면서 속으로 욕을 하기도 하죠. 그래도 대개는 밖으로 내색하지는 않습니다. 밖으로 표현하면 그 결과가 뻔히 예측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속으로만 생각했다고 아무런 영향도 없는 것일까요?
생각과 감정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 멈춰서 몸을 느껴보세요. 많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소리에 귀가 날카롭게 반응하거나 바람이 스칠 때 볼의 근육들이 긴장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강한 생각이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얼굴이나 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이 빨리 뛰며 “나 지금 긴장하고 있어” 라고 말을 해줍니다. 몸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난 다음에는 이후의 생각들이 한 방향을 향해 흐르듯 이어집니다.
예를들어 “지친다.”라는 첫 생각이 일어난다면 주변의 소리들이 자꾸 신경을 거슬리면서 “시끄러워서 짜증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혹은 “자고 싶은데 너희들 때문에 내가 잘 수가 없잖아” 하는 식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마음도 씨앗이 있어서 심은 대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람을 대할 때 첫 인상이 각인되어 이후의 판단에 대해서도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초두효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심어진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번 심어놓은 생각을 뽑아내고 다시 심지 않는 이상 그 생각은 자꾸 자라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그 생각은 다시 몸에 심어져 상황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사소한 생각의 반응들이 모여서 인상을 만듭니다. 편안한 인상도 있고 사나운 인상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상과 타인이 느끼는 나의 인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자세히 스스로를 바라봐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몸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씨앗들이 심어져 있을까요? 차분히 몸에 힘을 빼고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발견해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김세연/원광대학교 후마니타스학부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