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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칼럼] 소금그릇과 초심
[전라매일신문-칼럼] 소금그릇과 초심
마음인문학연구소2015-06-01

마음인문학 칼럼- 소금그릇과 초심

 

 

 

사람도 두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한번은 어머니의 모태를 빌려 육신으로 태어나고, 또 한번은 가치관을 잘 정립하여 정신적으로 태어납니다. 윤리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철이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제3의 탄생이 있습니다. 우주자연의 이치를 바로 알아서 그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요. 진리적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우리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어떠한 심법으로 사는 사람일까요?

 

그들은 마음을 쓰고 난 뒤에도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배를 구별할 때 그 중요한 기준은 ‘복원력’입니다. 무서운 파도를 만나 좌우로 흔들리면서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힘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공부를 얼마나 잘한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복원력에 있습니다. 경계를 당해서 한마음이 얼마나 본원으로, 본성으로, 초심으로 잘 돌려지는가 하는 마음의 복원력 여부가 공부인을 결정짓는 주요한 원칙이 되는 까닭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경계가 생기면 그 경계에 마음이 집착 되어서 원래의 초심 자리로 빨리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늘 헌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밉다, 곱다, 좋다, 싫다, 이롭다, 해롭다 하며 분별심으로 살고 선입감, 우월감, 열등감, 패배감, 실망감 같은 ‘감(感)’에 끌려 살기 때문에 용서하고 해원하며 살기보다는 자신도 괴롭고 타인도 괴로워지는 지옥세상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의 복원력이 잘 갖추어진 공부인들은 어떠한 인연을 대할지라도 한마음 내기 이전의 분별없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 응대할 줄 아는 힘이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도 즐겁고 타인도 즐거운 극락세상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녁 무렵에 김천 직지사를 들렀습니다. 청아한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선방 앞 댓돌위에 정갈하게 씻어놓은 흰 고무신들, 싸리나무 울타리 곁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칫솔들이 참으로 정겨웠습니다.

 

그런데 칫솔 밑 소금 그릇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 가벼운 전율과도 같은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그릇속의 소금은 가운데가 소복하게 쌓여 다음 사람이 사용하기 좋게 돋우어져 있었습니다. 그 소금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수행자의 덕스러운 마음씨가 그릇 전체에 따스하게 배여 있었습니다.

 

순간 ‘여기에는 마음공부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구나. 소금통 하나에도 초심을 챙기며 마음을 복원하고 사시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흐믓하고 행복했습니다.

 

극락과 천당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을 잘 챙기고 초심을 돌아보며 사는 공부인들이 많은 곳, 그곳이 바로 은혜로운 세상이고 낙원세상입니다.

 

 

정경아 / 전북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