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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칼럼] 어떻게 할까에 앞서 먼저 어떤 마음으로 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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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4-07-27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어떻게 할까에 앞서 먼저 어떤 마음으로 할까?
21세기가 다원화 사회라고 하지만 의식의 저변에는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모든 것을 좋고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사람에게 심어준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생각, 한 가지 방법이 좋으면 다른 것은 틀리고 나쁘다는 식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유발시키곤 한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ㆍ고용자와 노동자ㆍ종교 간ㆍ민족 간에 수많은 대립을 발생한다.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자신의 마음도 분열시키곤 한다. 상황에 따라 묘하게 일어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좋은 마음, 나쁜 마음으로 나눈다. 그리고 나쁜 마음이라고 판단하면 그 마음을 억압한다.
재미있는 점은 좋은 마음에 집착해도 괴롭다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심지(心地)’라는 단어가 있다. 마음을 땅에 비유한 것이다. 땅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산다.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해로운 식물과 동물도 땅에 의지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준에서 봤을 때 착한 마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좋은 마음ㆍ나쁜 마음, 좋은 것ㆍ나쁜 것으로 딱 자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나는 옳고, 그 사람은 틀렸다고 판단하거나 그 사람은 옳고 나는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마음을 볼 때도 상대방의 마음을 볼 때도
그렇다면 도덕적 기준 없이 살자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고자는 것은 ‘어떻게 할까에 앞서 어떤 마음으로 할까?’를 먼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이 아니고, ‘원래’ 그런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마음이 나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아무런 분별ㆍ생각이 없던 마음에 바탕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원효대사는 원래 시비가 없는 자리에서 묘한 시비를 바라보고, 원래 선악이 없는 자리에서 묘한 선악을 바라보고, 원래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묘한 인연을 바라보라고 했다. 어느 한쪽이 아무리 좋고 옳은 것이라고 판단되어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전제가 없는 마음에서 보면 서로 다른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보면 다른 것은 나쁜 것이기에 갈등이 시작된다.
오늘 하루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견해나 관점이 달라 갈등할 때 ‘어떻게 할까에 앞서 먼저 어떤 마음으로 할까?’ 먼저 생각하고 서로 다르다고 느끼기 전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면 ‘묘하게 다를 수 있구나. 갈등할 수도 있구나.’ 하고 묘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바로 이분법적 흑백논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다.
오덕진 /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