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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신문-칼럼] 마음이 어디로 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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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4-07-06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마음이 어디로 가나
2014년 07월 06일(일) 19:11 [(주)전라매일신문]
‘지금 내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운전을 하고 가다 대학 입구 빌딩 앞에 걸린 프랑카드의 문구에 시선이 갔다. 바꿔 말하면 ‘지금 여기 나의 마음은?’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을 타게 됐다.
자리에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핸드폰에 쏠려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눈을 통해 거기에 가 있었다.
객차 안에 쉬임없이 이어지는 안내 방송이며, 간혹 물건을 팔기 위해 질러대는 큰 소리도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 소리에 가 있지 않았다.
우리가 하루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 내 마음의 향방은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와 입과 몸을 사용했지만, 그 중심에는 마음이 있다.
이렇듯 몸과 마음을 쓰는 일을 업(業)이라 하는데, 그 업을 좋은 방향으로 지으면 선업(善業)이라 하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지으면 악업(惡業)이라 한다. 이렇듯 ‘업을 짓는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 ‘작업(作業)’이다.
작업을 할 경우를 당하면 어느 한편은 취하고 어느 한편을 버리는 취사(取捨)를 하게 돼 있다. 이에 바탕해 이뤄진 말을 일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일체가 오직 마음이 지은 바’라 한다.
세상은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며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다. 그 편리함을 즐기는데 부응해 물질문명의 세력은 마른 산에 불길 번지듯 커나간다. 그런데 그 물질이란 사람이 편하게 살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주인으로서 맘껏 부려 쓸 대상이건만 도리어 거기에 끌려 산다. 마치 물질을 사용해야할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돼 있는 형국이다. 그 물질을 더 취하기 위한 욕심이 물질 보다 백천 배 귀한 사람의 목숨까지 헌신짝 버리듯 한다.
낙원 세상에 살도록 발전하는 물질문명의 세계가 눈앞에 있건만 나의 삶, 나의 정신세계는 탐욕의 바람에 크고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이는 고해(苦海)와 같다.
그 원인은 일을 당해 나의 심신을 쓰는 내가 지금 여기 내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있기에 그렇다. 내 눈 밖, 내 귀 밖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람의 행실, 그의 말을 통해 그에게서 일어난 마음은 잘 보는데 내 눈 내 귀 안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은 왜 잘 보이지 않을까?
일을 당해 일어나는 내 마음을 잘 보고 잘 다스릴 줄 알면 행복한 꽃자리가 내 앞에 한없이 펼쳐질텐데.
일어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급선무(急先務)이다. 그러자면 먼저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빚어낸 것이다’는 진리를 확신하고, 이어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스리는 연습(練習)을 하고 또 해야 한다. 행복의 길.
지금 여기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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