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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조 정전공부5: 일상수행의 요법 6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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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22-11-01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일상수행의 요법 6조 그동안 함께 공부했던 일상수행의 요법 1·2·3조는 삼학, 4조는 팔조, 5조는 사은에 대한 실천 조목이었다면, 6조부터 9조까지는 사요에 대한 실천 조목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 함께 공부할 6조는 사요 가운데 그 첫 번째, ‘자력양성’의 공부이다. 일상수행의 요법 5. 타력 생활을 자력 생활로 돌리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자력이 없는 어린이가 되든지, 노혼한 늙은이가 되든지, 어찌할 수 없는 병든 이가 되든지 하면 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한 바에는 자력(스스로의 힘)을 공부삼아 양성하여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하라’ 하시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은가?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남의 힘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예컨대, 집안에 잘난 사람 하나만 있어도 그에게 기대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 맞벌이 부부로 서로 같이 피로한 처지에도 누군가는 집안일을 전담해야만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주로 받기만 하는 상황, 업무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팀원의 성과를 가로채는 직장인 등,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무엇에 기대거나 남에게 미루며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대다수의 타력 생활자들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쉬워 좀처럼 이러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펼쳐지는 상황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은 역할을 다 하고 있으며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잘못된 견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자기합리화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같이 생활하는 혹은 같이 업무를 보던 그/그녀가 없을 때 내가 곤란함을 느낀다면, 내 힘만으로 무언가를 완성하기 어렵다면, 더 나아가서는 그 분야에서 내가 무능해진다면, 나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부당한 타력 생활을 당당한 자력 생활로 돌리려는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력 생활을 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으나, 여기서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음 두 가지 이유를 강조해 보려 한다. 첫째,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업의 씨앗을 내가 언젠가는 반드시 받는 인과의 이치에 의해 이 세상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 한번 가지고 몸 한번 행동하고 말 한번 한 것이라도 그 업인이 허공법계에 심어져서 제각기 선악의 연을 따라 지은대로 과보가 나타난다. 주고받는 상호인과의 이치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부당히 받은 것 혹은 내가 부적절하게 빼앗은 것은 상대의 마음에 원망심을 심어주고 이를 반드시 언젠가는 갚을 수밖에 없다. ‘인과에 대한 믿음’이 진실로 있는 자라면, 특히나 남이 주지 않은 것을 억지로 취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남의 힘에 기대어 사는 삶 혹은 타인의 힘을 착취하는 삶은 진급하고 성장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영원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내가 그것을 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점점 기대는 삶에 익숙해짐에 따라, 비록 지금은 덕분에 편안하고 덕분에 무언가를 갖추어가는 듯해 보여도 길게 보면 무능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될 뿐이다. 영생을 통해서 영원한 강자가 되고 자신을 진급시키고 싶은 이라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참여하는 그룹에서 최대한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타력 생활을 자력 생활로 돌리자’하여 무조건적인 스스로의 힘만을 강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기로 하면 자력은 물론 타력도 같이 필요한 것이라, 여기서의 핵심은 자력과 타력을 병진하되 부당한 의뢰·착취 생활을 버리고 자력을 본위로 생활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태어나서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완전한 자력 생활이 가능해졌듯이, 스스로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타력에 힘입을 필요도 반드시 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나보다 잘 아는 이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 그룹 모임공부를 통해 서로를 이끌어주며 함께 향상해 나아가는 것 등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교화단회’는 타력에 힘입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할 수 있으며 의미 있는 장이라 할 수 있겠다. 나아가, 진리(타력) 전에 기도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 가는(자력)것 역시 타력에 힘입어 자력을 키워가는 대표적인 예이다. 괴로운 일에는 사죄의 기도를, 결정하기 어려운 일에는 결정될 수 있는 기도를, 역경을 당할 때에는 잘 풀려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십사 염원하는 기도를 정성으로써 계속하면, 자연히 마음의 중심을 잡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원하는 바의 실제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바라는 기도만 열심히 한다면 그것이 곧 부당한 타력 생활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 일상수행의 요법 6조 실천 점검하기 ※ 아마도 왼쪽, 오른쪽 둘의 경험을 많이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의 빈도가 더 높은지가 핵심입니다. 김일원 교무 http://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103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