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야기: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프롤로그
원기 107년(2022) 새해,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실까요? ‘세상의 모든 마음공부공동체(세마공)’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제가 여행가이드가 되겠습니다. 마음공부공동체만의 고유한 빛깔, 그곳에 얽힌 이야기와 만나보시죠. 첫 여행지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여행하는 마음, 초보자의 마음
이번 여행에서 만날 중요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스즈키 순류 선사(1905~1971)입니다. 이 분은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선불교의 가르침을 폈습니다. 말씀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초보자의 마음, 초심(初心)입니다.
In the beginner’s mind there are many possibilities; in the expert’s mind there are few. (초보자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많이 있고, 숙련자의 마음에는 거의 없다.)
이 말씀은 1970년에 출판된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에 담겨 있습니다. 그가 강조한 ‘beginner’s mind’는 서구인들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는 곳이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San Francisco Zen Center, 줄여서 SFZC)입니다.
세 개의 공간,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스즈키 선사는 1959년 샌프란시스코의 일본 사찰인 소코지(소코지(Sokoji)는 한자로 상항사(桑港寺)입니다. 샌프란시스코가 한자로 ‘상항’이니, 소코지는 ‘샌프란시스코 사찰’이라는 의미가 되겠네요.)에 파견되었습니다. 1961년 일본계 미국인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선방을 열게 됩니다. 회원들이 불어나 1962년에 SFZC가 결성되었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향후 소코지에서 나와 독립된 SFZC로 성장합니다. 이렇게 정착한 곳이 지금의 시티센터(City Center)입니다. 기숙사처럼 거주하면서 수행을 할 수 있고, 매주 이루어지는 좌선 등의 다양한 선방 프로그램에 참석할 수도 있습니다.
SFZC에는 전문적인 수행 공간인 타사하라 센터(Tassajara Zen Mountain Center)가 있습니다. 1967년에 마련된 이곳은 중부 캘리포니아주의 1,500m의 산 속에 위치하며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반 년 간 안거와 같은 전문 수행 시즌을 갖습니다. 나머지 반 년은 게스트 시즌으로, 이때는 일반인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유기농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스즈키 선사는 회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 공간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72년 그린걸치 농원(Green Gulch Farm)을 마련합니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위치한 농원은 시티센터와는 차로 40분 거리이고, 유기농으로 화훼와 밭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수행공간이니, 선농일치의 모습을 꿈꾸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어서 수행에 참여하지 않아도 이곳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열려 아이가 있는 가족이 가기에 좋은 곳입니다.
코로나도 바꾸지 못하는 수행 열정
코로나19 상황이더라도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온라인 프로그램은 작년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제가 작년 10월에 받았던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의 뉴스레터에는 이런 안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올해 우리는 법당에 앉아 함께 선을 못 하지만, 생기 있고 의미 있는, 강력하게 지지하는 연결의 느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매일 온라인 선방과 수업, ZOOM 설법과 모임을 통해 이 연결의 느낌을 재발견합니다. 좌선할 때 손을 모아 무드라를 만드는 것처럼요. -필자역
그리고 손과 손을 이어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함께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의 손들은 SFZC의 회원들이 좌선할 때의 손 모양을 모아서 만든 ‘무드라 모자이크’입니다. 이 사진은 SFZC의 수행의 특징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스즈키 선사는 <선심초심>에서 왼손을 오른손바닥에 놓고, 양쪽 엄지손가락이 닿도록 하여 아름다운 타원형의 손 모양이 되도록 안내했습니다. SFZC 회원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ZOOM을 통해 좌선을 합니다. 이때 만드는 손 모양이 바로 두 손을 아랫배 앞에 두는 타원형의 모습입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이렇게 수행을 해왔습니다.
앉아있음, 이것이 곧 깨달음의 발현
좌선은 스즈키 선사가 강조하는 수행의 정수입니다. 선사는 바른 수행의 시작을 자세에서 찾았습니다. <선심초 심>의 첫 내용이 ‘자세(posture)’이며, “자세는 바른 마음의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 자세를 취하는 것이 곧 바른 마음의 상태를 지니는 것이다. 성취해야 할 특별한 마음의 상태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선사는 바른 자세에 머물러 있는 지관타좌(只管打坐)를 지도했고, 바른 자세가 곧 깨달음의 발현으로 보았습니다.
사실 지관타좌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 역시 지관타좌의 수행에 관해 물었습니다. 스즈키 선사는 단지 바른 자세로 앉아 손 모양을 지키며 호흡을 알아차리는 노력이 전부라고 말합니다. 지관타좌. 그냥 좌선할 뿐(Just sitting). 이것이 좌선의 모든 것입니다.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내가 좌선을 한다’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 이해한 것이다. 붓다가 좌선을 하는 것이다. 네가 아니다.”
이러한 자세는 선(禪)의 마음과 통하며, 이 마음은 다시 초보자의 마음과 만나게 됩니다. 초보자의 마음에는 ‘내가 무언가가 되었다는 마음(숙련자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 마음을 간직해 온 곳이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입니다. 이곳을 첫 여행지로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초보자의 마음’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었길 바랍니다. 여행가이드로서 첫 안내이기에 서툴지만, 저도 초보자의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여행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온라인 선방(Online Zendo)도 운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sfzc.org)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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