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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칼럼 [삶의 향기] 역사를 ‘묻는’곳, 군산 동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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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21-12-23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손시은(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국사는 군산시가 조성한 근대역사문화의 거리의 끄트머리께 월명산 아래 자리한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기점으로 하는 2시간가량의 근대역사문화 탐방, 이른바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산의 거리와 건물에 새겨진 역사의 상흔을 보고 듣고 느끼며 걷다가 마침내 동국사와 마주하면, 그 일본스러운 분위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공간이동 장치를 타고 일본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광복 이후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흐름 속에서 일제가 우리나라에 세운 일본불교 사찰 수백여 개는 불태워지고 철거되었다. 동국사 역시 철거해야 한다는 논란이 이어졌지만 운 좋게도 살아남아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그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다. 조선 말엽, 서원의 폐단에 분노한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자 유생들이 크게 반발하며 앞다투어 상소했다. 그러나 대원군은 “서원이 있고 나라가 망하는 것이 좋은가, 서원이 없고 나라가 있는 것이 좋은가?”라며, 뜻을 꺾지 않았다. 당시 백성들은 춤을 추며 흥선대원군을 칭송하였다고 하니, 양반들이 서원을 빌미로 얼마나 백성들을 수탈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소각되고 철거된 수백 개의 사찰 역시 단지 일본불교 사찰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 못 하는 건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애초 종교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첨병을 자처했고, 일본 군부의 적극적인 비호와 일본인 대지주들의 후원 아래 한민족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앞장섰던 일본 승려들이 역사의 죄인이요 부처를 팔아서 먹고 산 도적일 터. 최근 동국사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우리 민족 앞에 사죄함으로써, 유일하게 살아남은 일본식 사찰이라는 이름에 값하려는 모양새다. 2012년 9월 16일, 일본불교 조동종에서 동국사에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조동종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사죄하는 참사문(懺謝文) 비를 세웠다. 조동종은 일본 내 가장 큰 불교 종단으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모자이자 독도 침탈의 선봉인 다케다 한시가 속했던 종파로 알려져 있다. 허리에 칼을 찬 낭인 승려 다케다는 일본불교가 조선의 강점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부처의 자비와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대신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사람을 도륙하는 일이 어찌 그때뿐이었으랴! 지금도 ‘성전(聖戰)’이라는 미명 아래 죽어나가는 애꿎은 목숨이 얼마나 많을지.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이 통렬한 참회의 결과이길 그리고 그 참회의 초심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 참사비 옆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비분강개할 역사적 사실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군산시민과 일본인의 성금을 모아 세운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소녀상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빨간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을씨년스러운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동국사 대웅전 뒤편 대숲이 푸르게 일렁인다. 죽순 요리를 좋아하는 승려들이 일본에서 옮겨다 심은 대나무라고 한다. 저 일본산 대나무가 뿌리를 내리자 토종참나무들은 말라 죽었고, 대숲에는 우리의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못한다. 일제가 패망한 지 7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제국주의 야욕이 굼실거리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대숲은 마치 동국사를 호위하듯 도열해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구른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게 마련이다.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라는 동국사의 배경은 후광도, 꼬리표도 아니다. 동국사는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생생한 교육의 현장일 뿐.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규정한 에드워드 카의 명언은 언제나 유효하다. 역사는 ‘묻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_2021&number=732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