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精神)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장·교무
일반적으로 ‘정신’은 육체 혹은 물질의 상대개념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최근 인지과학에서는 마음을 뇌와 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하며, 정신과 물질을 이원론적 실체로 구분하지 않는다. 초기불교에서는 명(名)과 색(色)으로 편의상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지만, 명색(名色)은 몸을 통해 결합되며,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명색은 식(識)으로부터 연기되고, 식은 명색으로부터 연기되어 상호의존관계를 이룬다. 대승유식에서는 근본식인 알라야식으로부터 모든 정신작용(종자)과 몸(유근신)과 환경(기세간)이 전변된다고 하였다.
도가에서는 원기(元氣)로부터 천·지·인 삼재가 나뉜다고 보았으며, 정(精)·기(氣)·신(神)을 사람의 삼원(三元)이라 하였다. “기는 정을 낳고, 정은 신을 낳으며 신은 밝음을 낳는다(氣生精, 精生神, 神生明)(<太平經>)”하여 기로부터 정과 신을 풀어간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정신’ 개념은 도가의 정기신(精氣神)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지만, 근대에 이르러서 독일어 ‘Geist’의 번역어를 차용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양의 정신 개념으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동양에서 정신은 마음과 혼용되며, 인간의 정신활동은 모두 마음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의 현상적 측면뿐만 아니라 본성적 측면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
마음이란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그렇게 원래 없기에 모든 것을 있게 한다. 분별이 없는 자리에서 모든 분별이 드러난다. 마음이 스스로 자신과 세상을 창조한다. 인간도 세상도 정신의 산물이며, 모든 문명도 정신의 소산이다.
‘정신(精神)’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2장)이라 하였다. 그리고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며, 역으로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分別性)과 주착심(住着心)이 없는 경지’가 ‘정신’이다. 즉 정신은 마음에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청정한 상태로서 ‘맑고 청정한 마음’, 혹은 ‘온전한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분별성’은 분별하는 습관성으로 가만히 있으려 해도 생각이 쉬지 않아 끊임없이 분별을 일으키는 성질을 말하며, ‘주착심’은 시비와 선악의 차별을 따라 어느 한편에 집착하는 마음을 말한다. 다만 ‘분별성’과 구분하여 무분별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별(무분별의 분별)의 경우, 본래 마음(성품)에서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진공묘유의 진리작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분별성(과 그로 인한 주착심)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오히려 정당한 분별은 잘 활용해야 한다. ‘정신수양’에서 ‘정신’은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두렷하고 고요한 마음의 경지로 모든 분별과 주착을 떠난 (좁은 의미의) 성품과 거의 같다. 이런 점에서 정신은 공적영지(空寂靈知)와 상통한다.
여기서 ‘영지’는 부처나 중생이나 차별이 없는 것으로 성품이 풍부하여 스스로 신령스럽게 아는 작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정신과 영지는 모두 성품과 마음에 걸쳐 있으면서 성품의 영령한 면, 마음의 청정한 면을 밝힌 것으로 동·정과 체·용의 어느 한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다만 정신은 온전하고 청정한 마음의 경지(상태)를 주로 밝힌 것이라면, 영지는 그 마음에서 치우침 없이 신령스럽게 아는 측면을 주로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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