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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삶의향기] 한결같은 푸름? 아니 한결같은 대나무
[새전북신문][삶의향기] 한결같은 푸름? 아니 한결같은 대나무
마음인문학연구소2021-03-25

대나무는 나무일까 풀일까? 얼마 전 이 질문을 받고 잠깐 당황했다.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 논란은 워낙 유명한 일이어서 여러 번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대나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에 배운 `오우가五友歌’에서도 대나무를 일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많은 분들이 대나무의 정체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해 놓았다.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꽤나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대나무는 초본식물, 즉 ‘풀’이라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목질이 아니어서 줄기가 연하고 대개 한 해를 지내고 죽는 초본 식물은 풀, 줄기나 가지가 단단한 목질이 된 여러해살이 식물은 나무라고 풀이하고 있다. 모르는 낱말의 의미 또는 어떤 낱말의 더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을 때면 국어사전부터 찾아보는데, 그 뜻풀이의 성의 없음에 실망할 때가 많다. 대나무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더욱 기가 막히다. 식물학에서 ‘대’를 목본으로 보고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전부다. 필자로서는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봐도, 식물에 조예가 깊은 분의 블로그 글을 읽어봐도 대나무가 왜 풀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건만, 생물학자 못지않은 식견을 가졌던 고산 윤선도는 이미 400여 년 전에 대나무의 생리를 이해했던 모양이다.

기실 대나무가 풀이면 어떻고 나무면 또 어떻겠는가. 언어는 때로 대상의 온전한 실체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나무의 스펙터클한 면모의 총체야말로 대나무의 참모습일 터, 그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변화상을 짧은 언어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 서양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대나무가 풀이어서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대나무의 존재 자체가 신비스러운 것이다.

코로나 시대, 대나무에서 희망을 찾다

바야흐로 봄이다. 신록에 자리를 내어주기 전에 앞다투어 핀 봄꽃들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마음에 적이 위안을 준다. 생동하는 봄기운을 가득 머금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울긋불긋 피어난 꽃들이 코로나의 긴 어둠을 걷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돋기 때문이다. 벚나무의 꽃망울은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툭 벌어질 것만 같다. 아직 3월인데 활짝 꽃을 피운 녀석들도 눈에 띈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푸르게 춤을 추는 걸 보니 복사꽃 필 날도 멀지 않았다.

추위를 잘 견디는 삼총사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일러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한다. 그런데 2021년 새해를 꽁꽁 얼린 북극발 한파에도 어김없이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매화나 의연하게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달리, 대나무는 몸살을 앓고 있다. 윤선도가 대나무의 사계절 푸른 모습을 좋아한다고 한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냉해를 입은 대나무의 잎은 누렇게 말라서 바람이 불 때마다 힘없이 흔들리며 바스락거린다. 대숲에 일렁이는 소쇄한 바람소리 대신 마른기침 소리가 난다. 그 기침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구룡마을 대숲을 찾았다.

익산 금마의 구룡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숲이 있다. 대나무로 온갖 것들을 만들어 쓰던 옛날에는 죽제품을 팔아 얻는 수입이 논밭에서 나는 소출보다 훨씬 컸기에, 구룡마을 대숲을 돈이 나는 밭이라는 뜻에서 ‘생금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플라스틱에 밀리고 값싼 수입 죽제품까지 들어오면서 구룡마을 대숲은 이따금 외지인들이나 찾는 곳이 되었다. 구룡마을 대숲도 지난겨울 추위에 냉해를 입어 온통 누렇게 변해 있었다. 2005년도 냉해를 입어 상당수를 베어냈다고 하는데, 조성한 산책로 주변을 제외하고는 베어낸 대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탓에 여기저기 까맣고 허옇게 말라죽은 대나무들이 마구 뒤섞여 스산한 풍광을 자아냈다.

그러나 그 스산함을 지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대숲 가득 넘실대고 있었다. 멀리서는 온통 누렇게 말라죽은 싸리비 묶음처럼 보였건만, 곁으로 다가가 보니 줄기마다 가지마다 푸른 빛이다. 대나무에 귀를 대보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정말로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정녕 생명의 소리, 희망의 소리다. 머지않아 대숲은 예전의 푸름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라는 모진 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삶도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709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