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간화선에서 ‘알 수 없음’과 ‘알고자 함’에 대한 고찰(오용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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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7-12-30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분류 논문 학술지구분 등재 논문제목 간화선에서 ‘알 수 업없음’과 ‘알고자 함’에 대한 고찰 저자 오용석 참여구분 HK연구교수 저자수 1 학술지명 禪學 第48號 발행처 한국선학회 게재일 2017.12.30 간화선에서 ‘알 수 업없음’과 ‘알고자 함’에 대한 고찰
오용석(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요약문> 붓다는 무기중도를 통해 형이상학적 질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무용성을 지적함으로써 수행자의 질문 자체를 파기한다. 그러나 간화선의 ‘질문’은 선사의 대답을 통해 그 질문이 하나의 의정으로 작용하는 동안 효력을 가지며, 간화선의 화두는 질문과의 관계를 통해서 거꾸로 질문자가 가지고 있는 희론을 격파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다. 간화선은 질문과 대답의 관계를 통해 질문자를 구체적이며 실존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 간화선은 무기중도의 형이상학적 질문을 희론을 격파할 수 있는 방편으로 전환시켰다고 볼 수 있다. 화두에서의 ‘알 수 없음’은 단독적일 수 없다. ‘알 수 없음’은 알고자 하는 주체적 자각 속에서 관계적으로 형성된다. 알 수 없다는 것은 마치 수학의 ∞와도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알고자 하는 새로움이 더해지더라도 ‘알 수 없음’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알 수 없음’과 ‘알고자 함’에 의하여 생겨나는 긴장감은 일종의 심리적 공백 상태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의정이다. 간화선 의정의 ‘알고자 함’은 정지(正知, sampajãna)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는 지혜의 계발과 연관된다. 그러나 이러한 앎은 아누빠사나(anupassanā)의 기능과 다른데, 왜냐하면 화두 자체가 관찰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자 함’은 ‘알 수 없음’과의 관계를 통해서 현상을 관찰하는 관찰자로서의 알아차림이 아니라 주객이 끊어지는 의(疑)의 상태를 현시한다. 주제어 : 간화선, 의정, 중도, 알 수 없음, 알고자 함, 희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