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장·교무
원래 마음은 분별이 없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경계를 만나면, 분별이 나타난다. 자극(경계)이 주어지면 그에 대한 반응(심신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심신작용은 경계에 대한 관념(분별성)과 그에 대한 집착(주착심)에 의해 일어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관성(慣性)을 가진다. 실제 경계를 대할 때, 별다른 알아차림이 없으면 익숙해진 관성에 따라 자동적인 사고와 습관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경계가 주어질 때, 이때가 바로 마음공부의 찬스이다. 경계는 심층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마음공부에서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경계를 경계인 줄 알아차리면, 더 이상 경계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경계 이면에 분별성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경계만을 탓할 수 없게 된다. 원래 경계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우리를 둘러싼 경계는 우리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예를 들어 입시지옥을 모두 싫어하지만, 그러한 경쟁적 입시환경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고, 좋은 가정을 꾸리고 잘 살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욕구가 집약되어 만들어진 구성물이다. 이러한 경계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경계를 탓하거나, 경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거나, 모두가 그러는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핑계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경계를 접했을 때, 그 ‘경계를 알아차리는 공부’와 함께 ‘경계를 대치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알아차림만으로도 마음은 일시에 집중력(찰나삼매)을 일으켜서 자동적 사고와 습관적 행동을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의 경계 속에서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경계를 대치하는(바꾸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평소에 단련하여 길들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경계 바꾸기’는 제3의 중립적인 대상, 즉 고정적 편견이나 치우친 감정 등을 일으키게 하지 않는 제3의 대상을 떠올려 대치하는 것이다. 절대자(하느님, 법신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 현상을 초월한 자리), 궁극적 진리(일원상, 무극, 태극, 도, 자연 등 상대가 끊어진 자리), 나아가 해(日輪), 달(月輪), 종소리, 새소리, 풍경 등 자연대상, 그리고 호흡, 단전, 아랫배, 발바닥 등 신체 일부나, 염불(나무아미타불)이나 주문 등이 모두 제3의 대상으로서, 경계를 대체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 중 명상이나 마음공부, 정신수양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일반적인 알아차림의 대상이 바로 ‘호흡’이다. 호흡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한순간도 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경계를 만났을 때, 바로 호흡을 챙기는 것은 마음공부(특히 정신수양)를 위해 매우 요긴하다. 인도 전통에서든 중국 전통에서든 모두 호흡법을 중시한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가운데, 평온을 얻고, 호흡을 관찰하면서 통찰을 얻게 된다. 이렇게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평소 단련해놓으면, 막상 경계를 접했을 때, 그 경계에 휩쓸려 요란하고 어리석고 글러지지 않고 그 경계로 향하던 마음을 바로 ‘호흡’으로 되돌릴 수 있게 된다. 경계를 호흡이라는 제3의 경계로 바꿀(대치할) 수 있다면 곧 본성을 회복하고 마음에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경계 속에서도 그것이 경계인 줄 알아차리고 동시에 제3의 대상(호흡)을 챙김으로써, 망념은 쉬고 진성(眞性, 본성, 원래 마음)이 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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