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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마음공부 공동체 : 크리스천 젠(Christian Zen)과 명상의 집
세상의 모든 마음공부 공동체 : 크리스천 젠(Christian Zen)과 명상의 집
마음인문학연구소2024-04-24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근대 유럽에 르네상스의 바람이 불고, 종교에도 변화가 일었습니다. 특히 마르틴 루터가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변하면 종교도 변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전통을 잇는 독일의 디트푸르트 수도원과 노르트발트 젠도도 이러한 변화를 맞았습니다.

 

수도원과 명상의 집

디트푸르트 수도원에는 ‘명상의 집(Meditationshaus)’이 있습니다. 명상의 집에는 대중이 함께 공부하는 공간이 여럿 있는데, 모두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상이 걸려 있습니다. 특히 방석이 놓여있고 명상벨(坐鐘)이 있는 곳을 보면 좌선 수행을 하는 선실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디트푸르트 수도원 
디트푸르트 수도원 
중앙에 십자가가 걸려 있고 그 왼편으로 ‘イエス キリスト(이에스 키리스토)’라고 써져 있다.
중앙에 십자가가 걸려 있고 그 왼편으로 ‘イエス キリスト(이에스 키리스토)’라고 써져 있다.
명상의 집의 젠 가든
명상의 집의 젠 가든
수도원 벽에 걸려있는 ‘원상(円相, ens)’. 일본 선(Zen)이 알려지며 깨달음을 뜻하는 원상을 ‘zen circle’이나 ‘ens’라고 부른다. 
수도원 벽에 걸려있는 ‘원상(円相, ens)’. 일본 선(Zen)이 알려지며 깨달음을 뜻하는 원상을 ‘zen circle’이나 ‘ens’라고 부른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일본 선불교 계열인 산보교단(三寶敎團)의 전통을 수용한 명상의 집입니다. 이 명상의 집은 1970년대부터 운영해 왔습니다. 이곳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유는 재정적인 위기 극복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탈종교 시대로 변화했고 유럽의 종교 인구도 줄었습니다. 수도원은 폐원 위기에 놓였고 이를 타개하고자 명상의 집을 짓게 된 것입니다.

 

라살 신부와 크리스천 젠의 탄생

명상의 집을 짓기까지 수도원의 빅토르 뢰브(Viktor Low, 1949~1983) 수사의 노력이 컸습니다. 요가명상을 배웠던 뢰브 수사는 일본 선불교를 공부한 휴고 에노미야 라살(Hugo Enomiya-Lassalle, 1898~1990) 신부를 만난 후 그와 함께 수도원 안에 명상의 집을 열었습니다. 이후 다른 곳에도 명상의 집이 지어졌는데, 그 중 한 곳이 수도원 밖에 독립적으로 지어진 명상훈련센터 노르트발트 젠도(Zendo)입니다. 여기서 젠도는 ‘선당(禪堂)’, 즉 명상의 집을 뜻합니다.

라살 신부는 독일 태생으로 1919년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수련기간을 마친 후 1927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29년에는 선교사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 히로시마에서 신부로 활동하던 중 1945년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되며 중상을 입어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성당을 짓고 불교 공부도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산보교단의 야마다 코운(Yamada Koun) 선사의 제자가 되어 선불교를 배웠습니다.

이러한 라살 신부와의 인연으로 디트푸르트 수도원은 크리스천 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로 써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고, 젠 가든(Zen Garden)을 볼 수 있으며, 일본식 꽃꽂이인 이케바나(生け花)가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왼쪽부터 산보교단의 스승인 야마다 코운 선사, 라살 신부, 뢰브 수사
왼쪽부터 산보교단의 스승인 야마다 코운 선사, 라살 신부, 뢰브 수사

 

말씀과 침묵의 수행

천주교는 성경에 바탕한 수행으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가 대표적입니다. 거룩한 독서(聖讀)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성경의 주요 구절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크게 읽기(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의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라살 신부가 속한 예수회에서는 영신 수련을 합니다. 전통적으로 4주 동안의 피정인데, 첫째 주는 죄와 하느님의 자비, 둘째 주는 예수의 생애, 셋째 주는 예수의 수난, 넷째 주는 예수의 부활과 하느님의 사랑의 단계로 진행됩니다.

천주교의 수행은 말씀과 묵상이 주를 이룬다면, 불교의 선, 특히 묵조선의 좌선(Zazen)은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침묵으로 일관됩니다. 산보교단은 조동종의 묵조선을 기반으로 하여 임제종의 간화선을 수용하였기에 기본적으로 ‘지관타좌(只管打坐)’, 즉 ‘그냥 앉아있음’의 침묵을 강조합니다. 우리에겐 불성(佛性)이 있기에, 지관타좌는 부처님의 앉아있음이며 불성(佛性)의 현현으로 파악합니다.

 

좌선과 섭심(攝心)

명상의 집에서는 태극권, 기공, 신성한 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유료로 운영됩니다. 그래도 대표적인 수행은 좌선입니다. 그리고 좌선을 중심으로 집중 훈련하는 것이 섭심입니다. 보통 좌선은 25분 단위로 이루어지기에 하루에 열 수차례의 좌선 세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좌선과 좌선 사이에는 보통 경행(walking meditation)을 합니다. 노르트발트 젠도의 경우에는 산행(山行)을 가미하는 등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크리스천 젠은 이제 천주교에서 하나의 수행 문화로 정착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젠의 탄생에는 라살 신부의 역할도 컸지만 시대적인 변화도 한몫했습니다. 종교는 대체로 보수적인데,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며 천주교는 다른 전통도 포용하는 열린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집이 수도원에서 꽃필 수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세상도, 수행 문화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만 쫒다 보면 무언가 새롭고 특별한 것만 찾아 헤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집 입구 현판의 ‘평상심(平常心)’이 눈에 들어옵니다. 도(道)가 새롭고 특별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평소의 그 마음에 있다는 것. 크리스천 젠은 천주교의 변화된 모습의 하나이지만, 젠이 추구하는 본질은 평상심에 있을 겁니다.

명상의 집 입구의 ‘평상심시도’ 현판. 마조 선사는 마음 곧 부처(卽心是佛)이고 평상의 마음이 곧 도(平常心是道)라고 강조했다.
명상의 집 입구의 ‘평상심시도’ 현판. 마조 선사는 마음 곧 부처(卽心是佛)이고 평상의 마음이 곧 도(平常心是道)라고 강조했다.

 

http://www.m-wonkwang.org/news/articleView.html?idxno=11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