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민족의학신문] 한의학·인류학·심리학·미술 등 ‘명상과 치유 학제간 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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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인문학연구소2015-06-25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이메일 프린트 |
한의학·인류학·심리학·미술 등 ‘명상과 치유 학제간 대화’▶한의대생 기고: 제5회 마음인문학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와서…
[1002호] 2015년 06월 25일 (목) 이유진 mjmedi@mjmedi.com 4년 전 처음 배운 명상(Mindfulness)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필자의 개인적 고뇌들을 갈무리해 주었다. 스스로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차츰 명상의 치유효과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명상이 정치나 의료, 교육 등 사회 제반 영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또한 학계에서는 명상에 대한 연구 및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가? 지난 5월 22일,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 연구소(소장 한내창)에서 주최한 ‘제5회 마음인문학 국제학술대회’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명상과 치유에 대한 학제간 대화’로 한의학·인류학·심리학·종교학·철학·디자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공자들이 참여했다.
특히, 미국·대만·영국·한국 등 아홉 명의 연자들은 각각 강사·연구자일 뿐 아니라 활발한 임상심리사·예술가·정치운동가·한의사로 활동하고 있어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했다.
조애너 쿡(Joanna Cook) 런던대(University College London) 강사는 명상이 심리, 의료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기 시작하는 영국의 사례를 발표했다. 쿡 박사는 명상을 통해 사회 전체의 공감능력이 늘어나며, 업무 효율성이 향상되는 등 정치·경제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치인들에게 명상을 교육하고, 형법·교육·보건·스트레스 분야에서 명상을 활용하도록 정책변화를 추구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영국의 정치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제임스 배(James Bae) 미국 배한의원 원장은 명상을 통한 공감능력 향상이 의사-환자 관계에서 성장과 치유의 동력이 된 본인의 진료사례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환자들이 질병 자체뿐 아니라 건강 정체성(Health Identity; 본인의 건강상태에 대한 주관적 인식) 왜곡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는데, 이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명상·종교의례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의사의 책임이다”라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아이러 헬더맨(Ira Helderman)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원(미국 심리상담사)은 미국 심리학계에서 불교적 치유기법들을 연구해 온 역사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현대 심리치료사들 사이에 ‘명상의 종교성’, ‘진아 vs 무아’ 논쟁을 비롯하여 상당한 의견대립이 존재한다고 발표하였다. 반면 킨 청(Kin Cheung) 템플대 연구원은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변천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최근 명상에 대한 세계연구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은 곧 건강(Health)개념 재정립에 대한 필요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필자는 서구에서 명상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명상의 스트레스 해소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킨 청 연구원에 따르면 명상이 운동보다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뛰어나다는 과학적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고 한다.
이를 명상의 치유효과에 대한 회의적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깊은 논의로 이끄는 열쇠로 볼 수도 있다. 즉, 명상의 목적은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에 있지 않으며, 오랜 명상의 경험을 통해 총체적인 삶의 가치관이 변화하게 되어 그 부수적인 효과로서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명상경험이 풍부한 조애너 쿡 박사와 객석에 함께 한 원광대 교무께서 공통적으로 한 말씀이 인상 깊었다. “행복이란 추구하면 얻을 수 없다.”
김재효 원광대 한의대 교수는 침술이 명상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즉, 한의사가 경혈을 찾는 과정에서 환자의 아픈 부위를 만지며 무뎌진 감각이 일깨워질 뿐 아니라 두 인격체가 정서적으로 감응한다는 점에서 명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침술의 ‘득기(치유)’ 효과를 연구할 때 현재는 오직 ‘국소감각’만을 기준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침술의 심신의학적 효과를 고려하면 심리적인 설문문항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생활 속 수양방법으로 추구해 왔던 다양한 전통의 명상기법들에 주목하는 발표들도 있었다. 박승현 원광대 교수는 도가에서 수양해 온 명상기법인 좌망과 심재를 소개했는데, 이런 수양법들의 연구가 그간 동양철학 연구에서는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어왔다고 하였다.
또한 롱방 펭(Rong-Bang Peng) 대만 자제대학 교수는 명상이 서구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해서 단순히 역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에 맞는 심리치료를 주체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명상에 대한 상상력의 범주를 넓히는 발표들도 신선한 자극이었다. 에반 스미스(Evan D. Smith)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교수는 파이(π) 숫자를 1만 자리까지 암기하며 명상과 유사한 치유 효과를 경험한 본인의 사례를 발표하였다.
폴라 어레이(Paula Arai)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교수는 전 세계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급속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상처 치유의 공간으로서 ‘가정(Home)’의 기능을 강조하며, 특히 가정에서 일상적인 의례나, 명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술대회를 참관한 뒤 필자에게 예비의료인으로서 두 가지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한의학을 ‘심신의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의사-환자 관계에서 활용하려면 환자의 고통에 직접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도록 명상을 더 깊이 수양해야겠다는 다짐이다.
또 하나는 학제적 연구에 대한 관심이다. 정치, 교육,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상’과 ‘치유’를 접목한 연구발표들을 들으면서 몸의 질병이 마음의 질병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마음치유가 의료 뿐 아니라 사회의 각 영역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다.
서점과 인터넷에는 각종 명상법에 대한 정보가 파편적으로 난무하지만, 학술적 측면과 경험적 측면,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전통적 관점과 서양의 과학적 연구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명상’을 들여다 볼 기회는 적다.
그래서 더욱 필자처럼 일반인 수준의 지식으로도 오색찬란한 빛으로 ‘명상’을 조명하게 해준 마음인문학연구소에 감사한다. 마음인문학연구소는 2010년 원광대학교에서 발족됐고 올해로 5번째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내년에는 그간의 학제적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책 출간을 계획 중이라니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9491 |